학회, 학교와 그 주변

ANTHOLOGY

한국음운론학회 연혁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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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국내에서 언어학의 각 분야 별 연구 모임의 필요성이 느껴지고, 형식문법연구회라는 모임이 시작된 뒤였던, 1982년 말쯤 한국언어학회 이사회에서 당시 편집이사였던 이상억 교수에게 음운론 쪽에도 연구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가 있었다. 마침 그런 필요성을 이미 느껴왔던 이 교수는 흔쾌히 동의하고 한국언어학회와 연계 하에 '음운론연구회'를 창립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음운론은 물론 음성학 및 형태론 영역까지 포괄하는 연구 교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같이 모일 만한 모든 해당 학자들의 명단을 우선 작성하였다.

창립 총회를 1983년 2월 22일 2시에 소집하면서 2를 겹쳐 택한 이유를 음운론의 한 바탕이 되는 BINARISM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였다. 호응은 당시 외국에서 음운론 분야를 전공하고 온 학자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국어학의 기반을 쌓으며 새로운 이론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까지 폭넓게 일어났다. 창립 초기에는 김석산, 남풍현, 이기문, 이명규, 이병건, 이상억, 이정민, 이혜숙, 전광현, 한영희(가나다 순) 교수 등이 참여하여 국어학과 영어학이 거의 반반의 비율로 시작하였다. 대개 최신간 원서나 논문들을 입수하여 강독한 뒤 토의했으며 간간이 회원의 논문도 발표 토론하였다. 원래 언어학 이론의 강독을 비롯하여 국어 자료에 대한 적용까지를 연구회에서 포괄하려는 의도였으나 그 뒤 대개 강독 위주로 흐르게 되었다. 그래서 매학기 5-6회의 격주 강독 끝에 마지막 1회는 특강과 논문발표의 기회를 1일간 갖게 되었다.

장소는 당시 중앙지에 있던 단국대의 영문과 한영희 교수가 넓은 연구실을 제공하여 초창기 요람으로 3년쯤 이용하였다. 그 뒤는 현재까지 대우문화재단의 후의로 재단빌딩 세미나실을 사용하고 있다.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격주 토요일 오전 10시 반에서 1시로 모임을 가져 왔고, 초기에는 한남동 미향촌(한식집), 중간에는 신사동 옛골(족발집), 현재는 대우빌딩 지하 만다린(중국집)에서 점심을 나누고 차도 든 뒤에 헤어지는 전통이 생겼다. 또 한 학기 한번은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가족적 여행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충주호 담수로 좀 더 잠겨 가던 도담 삼봉을 보기 위해 단양팔경을 다녀온 추억 등은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그 뒤 이 여행 모임은 지방 소재 대학이 한 학기 한번 회원들을 초청하여 강독회를 여는 형식으로 정착하였다. 그 때마다 해당 대학 회원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오는 민폐도 본의 아닌 관습이 되어 가고 있다. 각 학기 마지막 특강 집회도 회장이나 총무들의 재직교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초기에는 모임 통보 및 진행의 심부름을 이상억 '당번'(당시는 대표나 회장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고 그런 의식도 갖지 않았다.)이 85년 6월까지 담당하였다. 이어 92년 6월까지 김영석 회원이 대표로 연구회를 성장시켰고, 94년 6월까지 안상철 회원, 98년 6월까지 조학행 회원, 2000년 6월까지 김기호 회원, 그 뒤 현재까지는 강덕수 회원이 회장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그 동안 경험으로 보아 회장직은 2년 단임으로 되도록 많은 회원들이 책임을 돌아가며 맡아보아야 회장의 새 임원진이 된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학회에 대한 애정과 성의를 모두 많이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불문율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회장 후보는 이혜숙, 한영희,전상범, 이명규, 정국 원로회원과 전임 회장단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에서 추천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동안 이 모임의 강독 교재로 Papers in Phonology and Morphology 3권(범한서적)과Phonology and Morphology 27권(한신문화사)까지를 발간하여 왔다. 이렇게 모임의 활동이 주로 강독에 치우쳤기에 논문 발표 및 정보 교환이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오던 이상억 회원은 1993년 창립 10주년이 됨을 기념하여 '음성·음운·형태론 연구'란 논문집의 발간을 발의하여 20편의 논문이 묶여지게 되었다. 이 첫 발간은 정기 간행을 전제로 시작한 것은 아니나, 그 뒤 계속 발간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평소 강독 토론을 거쳐 넓혀진 식견이 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 문제 연구에 계속 적용되어 현재 6권 1호까지 많은 논문을 모아 발간하였다. 지난 1999년 이후 매호 발간시 20만원씩 1년에 40만원을 세종-ICKL 기금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기금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김영기 교수가 1992년 동 대학에서 8차 국제한국언어학회(ICKL) 개최시 발간했던 영문 논문집 <세종대왕>의 발매로 조성한 재원이며 이상억 회원이 관리하고 있다.

한편 1996년 9월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하는 학술지의 자격 요건에 맞추기 위해 '음운론연구회'를 부득이 '한국음운론학회'로 개명하였다. 2000년도에는 '음성·음운·형태론 연구'가 지원 대상 등재 후보로 선정되어 앞으로 지원금도 받고 수록 논문의 평가도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학회로 개명은 하였으나 초창기의 진지하게 '연구'하는 모임으로서, 회원 수보다는 질적 수준 향상을 지향하는 자세를 견지하려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 분야의 전공자들만이 격주의 빈도로 자주 정기적 모임을 갖는 예가 드물고 그것도 18년이나 꾸준히 계속해 왔다는 역사는 자긍심을 가져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바탕에는 108명(1993년 당시까지 연인원)에서 179명(1999년말 재정리된 회원)에 이르는 회원이 밑받침을 하는 것이며, 그중 외국(대부분 미국) 박사가 52명(1999년말 현재)에 이르는 실력 자체가 기둥이 되어 왔던 것이다.

학회 발표 논문집 또한 근래에는 오슬로 학회(2002), 베를린 학회(2003), 터키 안탈랴 학회(2004), 인도 뉴델리-서울 학회(2005)에서 발표한 논문을 모아 출판했다. 오슬로와 터키 정기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1) Exploitations in Korean Linguistics (Iverson 등 편집, 2002)과 (2) Inquiries into Korean Linguistics I (이상억 등 편집, 2004)에 게재되었다. 차후 정기 학회 후 내는 논문집은 Inquiries into Korean Linguistics라는 같은 제목을 갖도록 했다. 2년마다 만나는 간격이 너무 길다는 의견들에 따라 중간의 홀수년에도 작은 모임을 갖도록 이상억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기학회 사이의 소규모 모임인 베를린과 인도-서울 학회 (2005년 10월에 2번 만남) 내용은 두 권의 공간된 출판물, (3) Korean &/or Corpus Linguistics Proceedings of ICKL-TU Berlin International Conference on Korean Linguistics, 21-22 July 2003 (이상억 편집, 2003)과 (4) ICKL창립 30주년 기념논문집: 촘스키의 최소주의이론 및 최적성이론의 한국어에의 적용, (이상억 편집, 2005)을 탄생시켰다. 국제 한국 언어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상억의 주선으로 그 첫 번째 모임인 ICKL-JNU International Conference on Korean Linguistics를 2005년 10월 8일 인도 New Delhi에서, 두 번째 모임을 국내에서의 학회창립 30주년 기념행사로 서울대에서 10월 22일에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