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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도심에서 만끽하는 선조들의 정취
Author
관리자
Date
2017-10-04
Views
34
여성신문 2005-05-12
중구 필동 남산 기슭, 옛 수방사 터 2천4백여 평에 조성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지난 4월 중순 문을 연 이래 옛 정취를 그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터는 조선시대만 해도 맑은 물 흐르는 산골짜기에 천우각이 있
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던 곳이라 한다. 남산골 한
옥마을 역시 옛 모습을 살려 물을 흐르게 한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서울의 팔대가로 불리
던 사대부집에서부터 일반 서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 다섯채
를 옮겨놓았다.
이 가운데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한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이다.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
승업이 1860년대 지은 이 집은 1889년 경주 이씨 집안에 매각된 이
래 이벽동 일가가 4대에 걸쳐살았다. 당시에는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안채와 사랑채만 한옥마을에
옮겨졌다.
그곳에서 살았던 마지막 세대 이경애(51, 외교통상부 김삼훈 대사
의 부인으로 외교부인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씨와 그의
오빠 이상억(54, 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를 만나 당시 생활상을 들어
보았다.
“어머님(권판조 權判兆, 78)께 듣기로는 옛날엔 봉제사와 생일잔치
가 일상생활을 전부 차지했다고 합니다. 다락에서 그릇과 기구들을
꺼내놓는 일부터 여자들의 일이 전부 집안에서만 이루어져, 장보는
것도 사랑에서 일보는 서사(書士)가 일하는 아범을 데리고 나갔다고
해요. 남녀가 하는 일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고, 여자 중에서도 윗
사람들이 재료를 다듬어 색색이 채반 등에 놓아 보내면 부엌에 아랫
사람들이 익숙한 솜씨로 잘 익혀서 대령했다고 들었어요.”
조리가 시작되면 각종 고명이나 여러 가지 떡들, 백편과 꿀편 등을
4쪽짜리 시루에 앉히고 웃기떡도 여러 가지 만든다. 유과류는 간단
한 것은 집에서 했으나 혼사와 같은 큰 일엔 따로 숙수를 불러 썼
다. 마당 한쪽에 천막을 치고 팔 걷어부친 남자들이 큰 도마에서 지
지거나 튀길 것을 마련하여 기름질 하는 일은 굉장한 볼거리였다고.
손님치르기가 끝나면 노느매기가 또 큰일거리. 대소가댁이나 사돈
댁에 박쌈을 정성껏 싸 보낸다. 곰국이나 화채종류는 크고 작은 꽃
항아리에 담아 봉하고 갖은 음식과 편, 과일 등 심지어는 종지까지
빠짐없이 큰 대목판에 챙긴다. 그 위에 철 따라 다른 합보(봄·가을
엔 누비 합보, 여름엔 겹합보, 겨울엔 비단 솜합보)를 덮고 끈 달린
청보자기에 목판을 싸서 매주면 아범은 지게에 지고 안째미들은 머
리에 똬리를 얹고 이고 간다.
계절에 맞추어 저장식품을 장만하는 것도 봉제사 다음 가는 일. 정
월엔 1월장,고추장을 담그고 2,3월엔 조기젓, 동지달이 되면 무짠지
를 비롯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을 담근다.
이벽동댁의 명물 음식으로 ‘청국장’과 ‘벙거짓골 전골’이 유명
했다고 한다.
“이벽동댁 청국장이라고들 부른 청국장이 있었어요. 겨울에 먹는
냉음식으로 주로 사랑상 안주로 먹었지요. 전체 간은 소금으로만 하
고 보통 청국장은 김치를 넣고 끓이지만, 채 썬 생김치를 쓰는 것이
달라요. 또 벙거짓골 전골은 보통 전골이 모든 재료를 다 함께 모아
국물을 미리 붓고 끓이는 것과 달리 재료를 모은 뒤 국물을 부어 끓
이는 것이 특색입니다.”
한옥마을에는 도편수 이승업 가옥 외에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이
이전 복원돼 있다. 집의 규모와 살던 사람들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
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꾸며놓
았다.
선조들이 살던 때와 지금의 생활방식은 그 시간의 간극보다 훨씬
격차가 크다.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선조들의 옛자취를 찾아
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려울 것이다. 온고
지신 정신이 귀한 요즘 그래서 남산골 한옥마을의 원형 복원은 의미
가 깊다. 또 원형만큼이나 당시 생활상에 대한 복원도 중요한 과제
로 남는다.
한편 이상억씨는 내달 쯤 〈서울의 한옥- 홍문석골 이벽동댁〉(가
제)이라는 원형복원 보고서를 출판할 계획인데, 이 책에는 부록으로
저자의 모친 권판조씨가 서술한 당시(1890~1948년 무렵)의 의식주에
관한 기록도 포함할 예정이다.
〈최이 부자 기자〉
중구 필동 남산 기슭, 옛 수방사 터 2천4백여 평에 조성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지난 4월 중순 문을 연 이래 옛 정취를 그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터는 조선시대만 해도 맑은 물 흐르는 산골짜기에 천우각이 있
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던 곳이라 한다. 남산골 한
옥마을 역시 옛 모습을 살려 물을 흐르게 한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서울의 팔대가로 불리
던 사대부집에서부터 일반 서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 다섯채
를 옮겨놓았다.
이 가운데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한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이다.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
승업이 1860년대 지은 이 집은 1889년 경주 이씨 집안에 매각된 이
래 이벽동 일가가 4대에 걸쳐살았다. 당시에는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안채와 사랑채만 한옥마을에
옮겨졌다.
그곳에서 살았던 마지막 세대 이경애(51, 외교통상부 김삼훈 대사
의 부인으로 외교부인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씨와 그의
오빠 이상억(54, 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를 만나 당시 생활상을 들어
보았다.
“어머님(권판조 權判兆, 78)께 듣기로는 옛날엔 봉제사와 생일잔치
가 일상생활을 전부 차지했다고 합니다. 다락에서 그릇과 기구들을
꺼내놓는 일부터 여자들의 일이 전부 집안에서만 이루어져, 장보는
것도 사랑에서 일보는 서사(書士)가 일하는 아범을 데리고 나갔다고
해요. 남녀가 하는 일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고, 여자 중에서도 윗
사람들이 재료를 다듬어 색색이 채반 등에 놓아 보내면 부엌에 아랫
사람들이 익숙한 솜씨로 잘 익혀서 대령했다고 들었어요.”
조리가 시작되면 각종 고명이나 여러 가지 떡들, 백편과 꿀편 등을
4쪽짜리 시루에 앉히고 웃기떡도 여러 가지 만든다. 유과류는 간단
한 것은 집에서 했으나 혼사와 같은 큰 일엔 따로 숙수를 불러 썼
다. 마당 한쪽에 천막을 치고 팔 걷어부친 남자들이 큰 도마에서 지
지거나 튀길 것을 마련하여 기름질 하는 일은 굉장한 볼거리였다고.
손님치르기가 끝나면 노느매기가 또 큰일거리. 대소가댁이나 사돈
댁에 박쌈을 정성껏 싸 보낸다. 곰국이나 화채종류는 크고 작은 꽃
항아리에 담아 봉하고 갖은 음식과 편, 과일 등 심지어는 종지까지
빠짐없이 큰 대목판에 챙긴다. 그 위에 철 따라 다른 합보(봄·가을
엔 누비 합보, 여름엔 겹합보, 겨울엔 비단 솜합보)를 덮고 끈 달린
청보자기에 목판을 싸서 매주면 아범은 지게에 지고 안째미들은 머
리에 똬리를 얹고 이고 간다.
계절에 맞추어 저장식품을 장만하는 것도 봉제사 다음 가는 일. 정
월엔 1월장,고추장을 담그고 2,3월엔 조기젓, 동지달이 되면 무짠지
를 비롯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을 담근다.
이벽동댁의 명물 음식으로 ‘청국장’과 ‘벙거짓골 전골’이 유명
했다고 한다.
“이벽동댁 청국장이라고들 부른 청국장이 있었어요. 겨울에 먹는
냉음식으로 주로 사랑상 안주로 먹었지요. 전체 간은 소금으로만 하
고 보통 청국장은 김치를 넣고 끓이지만, 채 썬 생김치를 쓰는 것이
달라요. 또 벙거짓골 전골은 보통 전골이 모든 재료를 다 함께 모아
국물을 미리 붓고 끓이는 것과 달리 재료를 모은 뒤 국물을 부어 끓
이는 것이 특색입니다.”
한옥마을에는 도편수 이승업 가옥 외에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이
이전 복원돼 있다. 집의 규모와 살던 사람들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
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꾸며놓
았다.
선조들이 살던 때와 지금의 생활방식은 그 시간의 간극보다 훨씬
격차가 크다.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선조들의 옛자취를 찾아
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려울 것이다. 온고
지신 정신이 귀한 요즘 그래서 남산골 한옥마을의 원형 복원은 의미
가 깊다. 또 원형만큼이나 당시 생활상에 대한 복원도 중요한 과제
로 남는다.
한편 이상억씨는 내달 쯤 〈서울의 한옥- 홍문석골 이벽동댁〉(가
제)이라는 원형복원 보고서를 출판할 계획인데, 이 책에는 부록으로
저자의 모친 권판조씨가 서술한 당시(1890~1948년 무렵)의 의식주에
관한 기록도 포함할 예정이다.
〈최이 부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