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견문록

ANTHOLOGY

'하늘'과 '아가리'

Author
관리자
Date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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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2백주년의 해라니까 생각나는 얘깃거리가 있다. 1973년 파리 동양학자 대회 참석차 처음 유럽을 가게 되어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 개선문 광장 밑 지하철 역으로 계속 땅밑을 통해「입성」을 하게 되었다. 얼기설기 연결된 지하도를 누비며 되도록 개선문에 가까운 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날이 바로 7월 14일 아침, 퐁피두 대통령 등이 사열하는 대행렬이 개선문을 통과하는 시각이었다. 초행길에 짧은 불어실력이라 안내판도 잘 안 보일 지경인 채, 개선문 로타리 밑의 원형으로 된 지하도를 두어 바퀴 돌며 아무리 갈팡질팡해도 어떤 출구도 눈에 띄지 않아, 한 아저씨에게 『우 에 르 시엘?』이라고 물었다. 『하늘이 어디 있느냐?』는 뜻이었다.

잠시 말끄러미 쳐다보던 이 신사가 홍소를 터뜨리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오다 보니 「소르티(Sortie)」라는 출구 안내판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수 없이 외웠던 sortir(나오다) 동사! 후에 이 이야기를 불문과 선배에게 하였더니 땅 속에서 하늘을 찾는 것은「메타피직(형이상학적)」한 맛이 있어 좋다고 하였다.

또 1985년에 훔볼트 재단 초청교수로 독일에 가서 1년을 지내게 되었는데, 첫 두달은 독일어학교 Goete Institute에 다녀야 했다. 처음부터 친했던 이탈리아 학자와 점심 때 뮌헨 중심가의 「비어가든」에 가서 음식을 시켰다. ‘뮌헨 특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메뉴를 골라 잡았더니 식초에 흥건히 잠긴 흐늘흐늘한 고기조각들이 나왔다. 친구 녀석은 잘 알려진 ‘흰 소시지’를 시켜 먹으며 내 메뉴 내용이 무엇이냐고 했다. 웨이터를 불러 이 고기가 무엇이냐고 했더니 황소 아가리 살(Maul)이라고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옆에서 친구 녀석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 하길래, 『암, 내가 이제 독일소의 입을 먹었으니 앞으로 독일어를 꽤 잘하게 될 거야!』라고 물론 우리 통화수단인 영어로 응대해 주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웨이터가 관광객을 많이 상대한 터라 영어를 알아듣고 『이 쇠고기는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해 온 것입니다.』라고 나를 곤경에 몰아 넣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앞으로 스페인어도 잘 하게 될거야!』라고 했지만, 오늘날까지 스페인어는 인사말도 제대로 모르는 처지다. (1989.8.17. 조선일보 ‘一事一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