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문제 산책

ANTHOLOGY

팔이 얇다'니... 어불성설도 유분수지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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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암울했던 군사 정부 시대와 달리, 이제는 맘대로 말할 수 있는 표현 내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라지만, 도대체 어불성설(語不成說)인 말까지 공중파 대중매체에서 마구 쓰는 일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참고로 ‘어불성설’이란 말은 “조리가 맞지 않아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중에도 압권은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젊은 연예인들이 TV 화면을 점령하고, 다이어트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남한은 살빼기, 북한은 살까기”라고 분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 아이가 “너는 팔이 얇아서 나시를 입어도 되겠다”라고 하니까, 다른 아이가 질세라 “그런데 다리가 두꺼워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시’는 ‘소데나시’(소매 없는 웃옷)란 일본말이 남아서 묘하게 줄여져 쓰이는 것인데, 좀 길어도 ‘소매 없는 옷’이란 말을 쓰거나, 드물게 ‘민소매’라고 하자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문제는 팔이나 다리가 ‘두껍다/얇다’로 과감히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연히 ‘굵다/가늘다’로 써야 할 문맥인데, 어쩌다 이런 어불성설의 어휘 선택을 하는 출연자가 조금도 거리낌없이 방송에 계속 나오는지 끔찍스럽다. 우리 나라의 방송 프로그램을 짜는 두뇌들의 수준이 역시 어불성설이 아니고서야 이런 식의 표현을 마구 내뱉는 애들을 잘라 버리지 않고 어떻게 여전히 밀어 주는가? 말을 들으면 교양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이들이 쓰는 표현은 그 외에도 여러 군데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노래와 춤만 잘한다고 인기와 영합한 방송을 지향하다 보니 이런 편성이 된 것이다.

연예인과 같이 TV에 나온 씨름 선수도 “고기를 한 끼에 몇 사라 씩 먹어야 씨름을 할 수 있다”고 보란 듯이 <두꺼운 허리>를 자랑한다. 꼭 불고기 집에서는 ‘사라’라고 해야 알아듣는가? 역시 TV에서 ‘사라’져야 할, 언제 무엇을 터뜨릴지 모를 ‘폭탄’ 같은 출연자다. < > 속에서 허리를 일부러 ‘두껍다/얇다’로 표현해 보았지만, 허리의 피부 두께가 아니라 허리 자체의 굵기라면 당연히 ‘굵다/가늘다’로 써야 한다. 팔, 다리의 굵기도 마찬가지다.

위와 같은 잘못은 ‘물이 얇다/두껍다’라는 표현까지 나타나게 한다. 물론 ‘물이 얕다/깊다’를 잘못 말한 것인데, 어쩌다 이런 기본적 표현까지 못하는 세대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인지 염려스럽다. 나이든 세대들이 잘 가르치지 못한 책임도 있는 것이겠는데, 각 집안에서 기본적 말공부를 시킬 대화의 기회가 없어지고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변형된 말씨에 취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뿐 아니라 일반 대화에서도 많이 틀리는 것은 ‘육십 네 살’식으로 한자어 숫자(육십)로 읽다가 고유어 숫자(네)로 오락가락 하는 경우다. 이것은 한자어(육십)는 한자어(사)와, 고유어(예순)는 고유어(네)와 어울려야 질서 있게 들리는 원리를 모르는 데서 저지르는 잘못이다. 덧붙여서 뒤에 오는 단위어 ‘살’이 고유어이면 ‘예순 네 살’로 해야지, ‘육십 사 살’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단위어가 ‘세’라는 한자어면 ‘육십 사 세’가 자연스럽다. 반대로 ‘예순 네 세’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방언에 따라 이 원리가 자주 깨지는 지역이 있어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단위를 나타내는 형식명사가 ‘마리’ 같은 경우는 고유어임에도 ‘육십 사 마리’가 성립되는 것 같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순 네 마리’가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코 ‘육십 네 마리’는 표준어로서의 바른 표현이 아니다. 사람 수를 나타내는 ‘명’도 두 계통의 숫자와 다 쓰일 수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 사람’은 고유어 숫자와만 같이 쓰이고 ‘분’은 ‘사람’의 존칭 단위어다. 이같이 말들 사이에는 궁합이 맞아야 선택이 되는 관계가 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