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문제 산책

ANTHOLOGY

외래어와 왜색어(倭色語)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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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본의 우익과 그 뒤를 밀어주는 정부의 작태를 보면 울화를 느끼지 않을 한국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는 마치 못 된 버릇을 가진 아이놈이 계속 말을 안 듣는 행실과 같다. 원래 일본은 인류학적으로나 문화전파로 보아 우리와 같은 조상의 아이들 뻘이라는 심증이 든다. 그런데 일부 아이놈들이 못 되다 보면 일을 저질러 놓고 떼를 쓰기 마련이다. 강제징용이나 정신대 동원을 모른 척하며 거짓말로 새로운 우익 집단을 교육시켜 내려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그런 무리들이다. 일단 마음을 나쁘게 품고 비행을 저지르려는 아이놈을 진정으로 반성시켜 원래 나쁜 생각을 고쳐 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정 지시'를 따랐다고 하지만 본래 의도가 그대로 깔려 있으니, 입만 반성한다며 마음을 안 고치는 아이놈처럼 유치한 행태일 뿐이다.

우리는 일찍이 한자며 이두(일본 문자는 한국 이두의 변형일 뿐이다) 그리고 도자기 등의 고급 문화를 가르쳐 주었지만, 일본은 근래 우리에게 왕따(이지메), 원조교제 따위의 나쁜 버릇을 보내 줬다. 일본의 전자게임이나 만화 등에 깊이 깔린 저질 문화가 새로운 침략을 일삼고 있으며, 과거에 침투된 왜색어(倭色語)도 끈질기게 남아 있다. 젊고 늙은 두 세대에 걸쳐 께름직한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고 있는데도 특히 몰지각한 젊은이들이 일어인지도 모르고 '무데뽀'(무작정)로 왜색어를 써 '망가'(만화)를 만든다.

외래어는 원래 외국어였던 것이 들어와 귀화된 말을 가리킨다. 식민시대에 들어온 많은 일어 잔재가 아직도 쓰이고 있는데 일부는 외래어에까지 도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쓸어 버려야 할 왜색어, 즉 외국어 자체인 것이 더 많다. 아직도 양복점, 미장원, 음식점 및 건설 현장의 용어에는 일본말의 찌꺼기가 꽤 많이 쓰이고 있어 뜻있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예들이 허다하다. 가령 옷에 관해 '가라'가 좋다 나쁘다 하는 표현은 '무늬'란 우리말이면 족할 것이고, '기지'도 '옷감, 천'으로, '소데나시'는 '소매없는 옷/민소매'로 '도꾸리샤쓰'는 '긴목샤쓰' 정도로, '곤색'은 '감색'으로 고칠 수 있다.

식당에서도 '오뎅' 대신 '꼬치(백반)', '뎀부라' 대신 '튀김'은 꽤 세력을 얻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 '우동' 대신 '국수'가 꼭 쓰인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 밖에 '요지'는 '이쑤시개', '사라'는 '접시', '와리바시'는 '소독저, 나무젓가락', '시보리'는 '물수건'으로 대체되어 가지만 아직 일본식도 꽤 사용되고 있다. '마호병'은 '마법병'이 너무 직역 같다면 '보온병' 정도가 좋겠고, '히야시한' 맥주도 '차게 한' 맥주로 부를 수 있겠다. '간스메'도 '통조림', '강기리'는 '통(조림)따개'가 가능하다. 건설관계 용어도 목수나 미장공, 철공이나 연관공 등등 각 분야에 걸쳐 아직도 일본식 용어로 모든 일을 지시하고 전수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가 자존심도 없이 왜색어를 왜 버리지 못하는니까, 일본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은 드물고, 잡신(雜神)의 도(道)를 따르는 오만한 민족주의자들이 득세를 한다.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청산하려는 독일의 대다수 국민에 비하면 정말 한심한 인간들이라는 판단이 선다. 필자가 1년간 훔볼트재단 연구교수로 가 있던 남독 뮌헨 교외에 '다카우'라는 마을이 있다. 거기는 유태인 수용소와 소각장이 있던 곳으로 그 일부가 재현되어 있고 큰 위령탑이 세워져 있어서 독일인이 반성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 곳에선 진심으로 참회하며 미래에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게끔 전시물과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과거나 내일은 모르고 본일(本日)만 아는 일본, 근시안의 민족은 언젠가 동아시아 이웃들에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