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
ANTHOLOGY
옥상 채소밭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Views
49
취미에는 살생(殺生)적인 수렵 낚시부터 정좌(靜坐)가 필요한 독서 음악감상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는 직업상 노상 해야 하는 것이니 이미 취미의 요건이 되는 기분전환의 의미는 없어졌다.
사실 미국에서 5년여의 박사학위 과정을 겪으면서 지겹도록 일상적인 독서생활만 하다 보니 무언가 색다른 일과를 마련하고 싶었다. 논문도 대충 윤곽이 잡혀 가던 마지막 해에 틈틈이 도처에 널린 낚시터로 릴(reel) 낚시도 나가 보았고,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대학 골프장에도 나가 보았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많이 들어 집 가까이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었다.
마침 그 해에는 겨울이 몹시도 추워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던 플로리다까지 한파가 몰아쳐서 내가 있던 일리노이주 등지로 공급할 겨울 야채나 과일들이 모두 얼어 버렸다. 모든 소채류값이 2?3배씩 뛰어 올랐고 그나마 품귀였다. 주위에서 자작(自作)으로 채소밭을 시작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학에서는 희망자에게 학교 농토의 일부를 그냥 할당해 주었으나 나는 가까운 집 근처 공지를 택했다.
열 가지쯤의 씨앗을 뿌렸더니 무 배추는 벌레가 생겨 실패였으나 빨간무·상추 등은 따먹기 바쁘게 잘 자랐고, 시금치·호박·오이·양파·파 등은 그런대로 조금씩 수확을 보았다. 당근은 크게 뿌리가 앉기까지 한 여름이 다 갔으나 대풍작이었다. 78년 초겨울에 귀국하면서 다 먹지 못한 채소를 모두 거두어 한국·미국 친구들에게 한아름씩 선사를 했다.
귀국 후 나의 취미는 교통편이 어려운 낚시나 돈 많이 드는 골프는 엄두도 못내고, 학교에서는 정구, 집에서는 채소 가꾸기로 낙착되었다. 정원은 이미 꽃나무들로 꽉 차있는 집이라, 슬라브식 옥상에 흙을 20여 동이 옮겨 붓고 쉬 자라는 빨간무와 벌레 타지 않는 상추를 주로 심었다. 그 뒤 신문 토픽란을 보니 외국에서도 편편한 옥상에 잔디 밭을 덮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춥지 않도록 한다는 기사가 났었다. 내 아이디어를 뒤늦게 탐지해 간 모양이나, 공인(公認)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아이디어는 아직 내 것처럼 생산성이 있는 것은 못된다.
요즘 서울의 슈퍼마켓에 나가 보면 한 십년전보다는 소채류가 상당히 다양성있게 갖춰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양배추·샐러리·샐러드용 양상추는 이미 흔해졌고, 식용 아스파라거스·꽃양배추·비이트(beet)·얌(yam) 등까지 눈에 띄는 상점도 있다. 귀국할 때 이들의 씨앗을 가져 왔더라면 손수 값싸게 길러 먹을 수 있었겠다는 후회도 난다.
한편 국내에서 고추 등의 기근이 나서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곤 좀 이해가 안가는 면이 있다. 내 자신이 외국생활에서 점차 덜 맵게 먹는 습관이 붙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음식들은 근래에 너무 매워지는 유행이 든 것 같다. 음식을 맵고 짜게 해서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남도 지방 풍속에 휩쓸려서인지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요식업소에서도 필요 이상의 고추를 쓴다. 대략 반 정도로 줄여도 외국산 고추는 매운 맛이 그대로 나는데 빛깔을 맞추느라고 뻘겋게 모든 반찬을 물들인다. 고추는 조금 먹으면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돋구며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여,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입맛이 개운하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이 위장을 자극하여 설사까지 일으키기 쉽다 한다. 아마 한국사람에게 흔한 위암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외화 절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도 덜 맵게 먹기 캠페인을 벌여 봄직도 하다. 아울러 에너지 절약과 생활비 절약시대를 맞아 옥상 채소밭 가꾸기도 집집이 권해 볼 만하다. 지금 뿌려도 늦가을까지 햇살은 좋을 것이고, 결코 배신하지 않는 것이 흙이니까. (대우가족 70호, 1980.5.)
사실 미국에서 5년여의 박사학위 과정을 겪으면서 지겹도록 일상적인 독서생활만 하다 보니 무언가 색다른 일과를 마련하고 싶었다. 논문도 대충 윤곽이 잡혀 가던 마지막 해에 틈틈이 도처에 널린 낚시터로 릴(reel) 낚시도 나가 보았고,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대학 골프장에도 나가 보았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많이 들어 집 가까이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었다.
마침 그 해에는 겨울이 몹시도 추워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던 플로리다까지 한파가 몰아쳐서 내가 있던 일리노이주 등지로 공급할 겨울 야채나 과일들이 모두 얼어 버렸다. 모든 소채류값이 2?3배씩 뛰어 올랐고 그나마 품귀였다. 주위에서 자작(自作)으로 채소밭을 시작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학에서는 희망자에게 학교 농토의 일부를 그냥 할당해 주었으나 나는 가까운 집 근처 공지를 택했다.
열 가지쯤의 씨앗을 뿌렸더니 무 배추는 벌레가 생겨 실패였으나 빨간무·상추 등은 따먹기 바쁘게 잘 자랐고, 시금치·호박·오이·양파·파 등은 그런대로 조금씩 수확을 보았다. 당근은 크게 뿌리가 앉기까지 한 여름이 다 갔으나 대풍작이었다. 78년 초겨울에 귀국하면서 다 먹지 못한 채소를 모두 거두어 한국·미국 친구들에게 한아름씩 선사를 했다.
귀국 후 나의 취미는 교통편이 어려운 낚시나 돈 많이 드는 골프는 엄두도 못내고, 학교에서는 정구, 집에서는 채소 가꾸기로 낙착되었다. 정원은 이미 꽃나무들로 꽉 차있는 집이라, 슬라브식 옥상에 흙을 20여 동이 옮겨 붓고 쉬 자라는 빨간무와 벌레 타지 않는 상추를 주로 심었다. 그 뒤 신문 토픽란을 보니 외국에서도 편편한 옥상에 잔디 밭을 덮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춥지 않도록 한다는 기사가 났었다. 내 아이디어를 뒤늦게 탐지해 간 모양이나, 공인(公認)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아이디어는 아직 내 것처럼 생산성이 있는 것은 못된다.
요즘 서울의 슈퍼마켓에 나가 보면 한 십년전보다는 소채류가 상당히 다양성있게 갖춰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양배추·샐러리·샐러드용 양상추는 이미 흔해졌고, 식용 아스파라거스·꽃양배추·비이트(beet)·얌(yam) 등까지 눈에 띄는 상점도 있다. 귀국할 때 이들의 씨앗을 가져 왔더라면 손수 값싸게 길러 먹을 수 있었겠다는 후회도 난다.
한편 국내에서 고추 등의 기근이 나서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곤 좀 이해가 안가는 면이 있다. 내 자신이 외국생활에서 점차 덜 맵게 먹는 습관이 붙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음식들은 근래에 너무 매워지는 유행이 든 것 같다. 음식을 맵고 짜게 해서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남도 지방 풍속에 휩쓸려서인지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요식업소에서도 필요 이상의 고추를 쓴다. 대략 반 정도로 줄여도 외국산 고추는 매운 맛이 그대로 나는데 빛깔을 맞추느라고 뻘겋게 모든 반찬을 물들인다. 고추는 조금 먹으면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돋구며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여,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입맛이 개운하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이 위장을 자극하여 설사까지 일으키기 쉽다 한다. 아마 한국사람에게 흔한 위암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외화 절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도 덜 맵게 먹기 캠페인을 벌여 봄직도 하다. 아울러 에너지 절약과 생활비 절약시대를 맞아 옥상 채소밭 가꾸기도 집집이 권해 볼 만하다. 지금 뿌려도 늦가을까지 햇살은 좋을 것이고, 결코 배신하지 않는 것이 흙이니까. (대우가족 70호, 19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