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

ANTHOLOGY

무공해 캠퍼스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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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요즘은 매일같이 쌓이는 전자우편을 당일내로 처리하고 나가다 보면 밤 늦게 자하연(紫蝦淵) 뒤를 지나게 된다. 가로등도 없이 으시시한 나무 그늘을 벗어나면 흐린 불빛에 수면이 드러난다. 20년 가까이 이 경치는 그런 대로 낭만스럽게 닿아왔다. 그러나 지난 번 동아리의 통과의례로 두 학생이 익사하는 비극적 사건이 있던 뒤부터는 아무래도 처연한 기분을 누르지 못하며 지나다닌다. 객기 끝에 자해연(自害宴)이 빚은, 이런 “일어나선 안될 일”이 왜 일어났는가? 그 이유의 한 가닥은 말을 않고 또는 못하고 지낸 우리 교수들에게도 있다.

본부에 불려들어가 교무처 일을 보던 80년대말 총장실 난입사건이 있었다. 흥분한 학생들의 파괴력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실감이 안 날 것이다. 무언가 앞날이 두려웠다. 물론 그 전에도 소위 아크로폴리스(이 명칭은 ‘아고라’라고 붙었어야 할 것이 잘못된 것이다)에서 스피커 사용을 막아보려고 총장 몸소 플러그를 빼시려다 뜻대로 안된 사건도 있었다. 하물며 이 괴력에 맞서 일개 교수가 무슨 언행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식으로 유예만 해가면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가? 현재 우리 캠퍼스에는 각종 자해와 공해가 판을 친다. 카드놀이나 머리 염색 정도는 남에게 직접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 일종의 자해 행위겠지만 남에게 공격적인 해를 가하는 공해(公害)들은 참기 어렵다. 가뜩이나 환경오염이 심해 산기슭 캠퍼스로 들어와 있는 시간만이라도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학생들은 우리 캠퍼스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공해 중에서도 으뜸은 각종 소음이다. 스피커를 통해 점심시간과 금요일 오후에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은 다른 선진국 캠퍼스에서는 겪은 일이 없다. 내 연구실은 학생회관을 마주보고 있어 호객하는 듯한 시끄러운 방송만 나오면 연구는 끝장내고 짐 싸들고 나와야 한다. 농악패의 사물놀이도 아주 외진 곳에서 하든지 수업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자제해야 한다. 수업 중에 복도나 창가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학생들도 기본 예의를 좀 지켜야 한다.간혹 오토바이 폭발음이 교내에서 나는 것도 문제인데 앞으로 단속을 한다니 다행이다.

기본적 예의를 지키지 않아 공해 수준에 이른 통행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팩차기는 피해 다닐 수나 있지만 공차기는 도저히 상식 밖의 행위다. 대개 건물간의 연결 공간, 즉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공으로 위협하는 행위이다. 복도에서도 일시에 많은 학생들이 이동할 때 부딪히는 일은 다반사다. 가로막고 떠드는 무리도 있고 뛰어서 설치며 뚫고 가는 학생도 있다. 서로 진로를 터주며 기분 좋게 이동하도록 하자.

‘동방무례지국’이라고 어떤 외국인이 지적한 것은 우리가 달게 삼켜야 할 쓴 약이다. 그래도 근래에는 데모 끝에 최루탄 바람이 불어 들어 오지는 않아, 공기의 공해는 없어서 숨이나 크게 쉬고 안위를 삼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