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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말, 할말, 쓴말
Author
관리자
Date
2016-01-29
Views
66
잔말, 할말, 쓴말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표현해서 엮어내기가 어렵다는 말일뿐 아니라, 발표된 내용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더욱 짙다. 자기 신변잡담을 늘어놓으면 남을 다치지 않아 무난하지만, 자기자랑이 섞이거나 시시콜콜한 잔말만 늘어놓게 되는 일이 잦다. 남에게 글 읽는 시간을 들이게 할 요량이면 꽤 유용한 내용이 담긴 글을 써내야 하는 것이 모든 글짓는 사람들의 윤리다. 더구나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시대에는 꼭 할말만 해내는 버릇은 큰 미덕이 될 수 있다.
희비의 추억이 담긴 호주 땅에서의 3년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는 때가 임박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런 때가 되다 보니 이번 글에서는 꼭 할말을 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쓴말, 쓴 소리가 될지라도, 그 동안 하찮은 글에 관대한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는 좀 무게 있는 글을 드려야겠다는 각오다.
첫 번째 쓴소리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느 한인 교회 모임에 참석해서 한국으로 가게 된 호주인 목사와 한국에 관한 얘기를 나눠 달라는 부탁을 받은 자리에서 생긴 일에 관한 것이다. 그 교회의 장로 한 분이 옆에서 영어로 말참례를 하시다가, 만약 한국에서 운전하다 교통경찰에게 잡히면 면허증 밑에 돈을 얼마간 넣어서 주고 모면할 수 있다는 요령을 미리 교육시키셨다. 그분은 그렇게 함으로 오랜 외국생활 중에도 여전히 한국 사정에 밝고, 외국인에게 흉금을 터놓는 솔직성과 비판적 태도를 과시했다고 자부하셨던 듯하다. 내가 그런 요령 교육보다 더 중요한 얘기부터 해 주어야 한다는 눈치를 몇 차례 보내도 , 그 장로님은 도무지 자기 얼굴에 침뱉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좀 오래 됐다고 또 영어를 좀 하신다고 그럴 수가 있으랴 싶어, 나는 한국말로 바꿔 그분께만 면박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도 꽤 오래된 교포일수록 제 얼굴에 침뱉기를 무의식 중에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측에서 무료 초청 케이스라도 있으면 제일 먼저 나서고, 뒤로는 서울과 줄대기에 연연하는 것이다.
두 번째 쓴말은 서울에서 오신 꽤 유능한 교수님의 순회강연에 관한 것이다. 호주정부초청으로 왔으니 역시 한국의 치부가지 기탄없이 들어내야 비판적 인텔리로서의 면모를 심어주고 가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하고 많은 화제 중에 건설업계가 관공서에 돈을 바치느라고 다리나 빌딩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를 되뇌이고 다닐 필요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칠 때 자신의 모습은 djejg게 해부되고 있는가? 적어도 속으로 비웃음을 사는 꼴은 당하지 말자. 나는 직업상 한국학을 가르치고 또 한국선전을 세일즈맨처럼 하고 지내야 좋은 처지라 그런지 모르지만, 애써 조금씩이라도 쌓아가는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부 지식인의 생각없는 언동이나 한국의 야바위 건설업자의 부실공사는 똑같아 보인다. 알릴 것을 알리기에도 바쁜 정보시대에 산다는 점을 잊지 말자.
세 번째 할 말은, 시드니대의 수뇌급 인사를 방문하고 가시는 한국의 저명인사들에 관한 것이다. 전직 현직의 여러분들을 안내하고 배석해 보면 그 짧은 면회시간에 꼭 나눠야 할 얘기보다는 의례적 대화로 시간을 거의 다 쓰고 불충분한 영어로 핵심을 잘 파고들지 못한 채 타임 아웃이 되는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 면담은 바쁜 분들이 하기에는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단지 만남으로 해서 성과는 어느 정도씩 생기는 것 같아 안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떠나갈 때 한국의 모대학 총장 일행이 결혼식용 백색 임대 리무진을 타고 왔다가 캠퍼스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배웅하는 호주 교수들이 한없이 부러운 표정 밑에 실망스러운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한국의 고위직 인사들까지도 외국의 관례를 몰라 심지어 골프장에서까지 복장 및 예절의 지적을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알아서 해야 업신여김을 안 당할 것이다. 촌스러운 코리언의 인상을 흔히 심어주는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현지 여건과 관습을 알고 대해야 제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할 얘기는, 호주에 한국인 이민 및 체류자가 적다 보니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망라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전문인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를 대충 엇맡아서 전문가연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불필요한 잡음이 한국인 사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호주인 사회까지도 새어 나가게 되어 끝내 한국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비전문인일수록 자신의 방어를 위해 전문성을 부르짖되 그 내용은 모르므로 무리하게 권위적 태도로 자기도취에 빠지게 된다. 이 증세는 왜 자기를 알주지들 않는가 하는 대사회불만증으로 발전해 즐거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학 국제회의나 한국어 교육 및 시험에 관한 여러 일에 관여하면서도 이런 경우를 흔히 보았다. 다른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들도 양상은 똑 같을 것이다. 공자님 말씀에“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일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몰라보는 일을 두려워하라.”는 내용은 옳고도 옳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두려운 마음으로 남긴다. 글쓰기는 역시 어렵다. (호주 동아일보 “시드니 광장‘ 1997.1.14.)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표현해서 엮어내기가 어렵다는 말일뿐 아니라, 발표된 내용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더욱 짙다. 자기 신변잡담을 늘어놓으면 남을 다치지 않아 무난하지만, 자기자랑이 섞이거나 시시콜콜한 잔말만 늘어놓게 되는 일이 잦다. 남에게 글 읽는 시간을 들이게 할 요량이면 꽤 유용한 내용이 담긴 글을 써내야 하는 것이 모든 글짓는 사람들의 윤리다. 더구나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시대에는 꼭 할말만 해내는 버릇은 큰 미덕이 될 수 있다.
희비의 추억이 담긴 호주 땅에서의 3년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는 때가 임박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런 때가 되다 보니 이번 글에서는 꼭 할말을 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쓴말, 쓴 소리가 될지라도, 그 동안 하찮은 글에 관대한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는 좀 무게 있는 글을 드려야겠다는 각오다.
첫 번째 쓴소리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느 한인 교회 모임에 참석해서 한국으로 가게 된 호주인 목사와 한국에 관한 얘기를 나눠 달라는 부탁을 받은 자리에서 생긴 일에 관한 것이다. 그 교회의 장로 한 분이 옆에서 영어로 말참례를 하시다가, 만약 한국에서 운전하다 교통경찰에게 잡히면 면허증 밑에 돈을 얼마간 넣어서 주고 모면할 수 있다는 요령을 미리 교육시키셨다. 그분은 그렇게 함으로 오랜 외국생활 중에도 여전히 한국 사정에 밝고, 외국인에게 흉금을 터놓는 솔직성과 비판적 태도를 과시했다고 자부하셨던 듯하다. 내가 그런 요령 교육보다 더 중요한 얘기부터 해 주어야 한다는 눈치를 몇 차례 보내도 , 그 장로님은 도무지 자기 얼굴에 침뱉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좀 오래 됐다고 또 영어를 좀 하신다고 그럴 수가 있으랴 싶어, 나는 한국말로 바꿔 그분께만 면박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도 꽤 오래된 교포일수록 제 얼굴에 침뱉기를 무의식 중에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측에서 무료 초청 케이스라도 있으면 제일 먼저 나서고, 뒤로는 서울과 줄대기에 연연하는 것이다.
두 번째 쓴말은 서울에서 오신 꽤 유능한 교수님의 순회강연에 관한 것이다. 호주정부초청으로 왔으니 역시 한국의 치부가지 기탄없이 들어내야 비판적 인텔리로서의 면모를 심어주고 가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하고 많은 화제 중에 건설업계가 관공서에 돈을 바치느라고 다리나 빌딩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를 되뇌이고 다닐 필요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칠 때 자신의 모습은 djejg게 해부되고 있는가? 적어도 속으로 비웃음을 사는 꼴은 당하지 말자. 나는 직업상 한국학을 가르치고 또 한국선전을 세일즈맨처럼 하고 지내야 좋은 처지라 그런지 모르지만, 애써 조금씩이라도 쌓아가는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부 지식인의 생각없는 언동이나 한국의 야바위 건설업자의 부실공사는 똑같아 보인다. 알릴 것을 알리기에도 바쁜 정보시대에 산다는 점을 잊지 말자.
세 번째 할 말은, 시드니대의 수뇌급 인사를 방문하고 가시는 한국의 저명인사들에 관한 것이다. 전직 현직의 여러분들을 안내하고 배석해 보면 그 짧은 면회시간에 꼭 나눠야 할 얘기보다는 의례적 대화로 시간을 거의 다 쓰고 불충분한 영어로 핵심을 잘 파고들지 못한 채 타임 아웃이 되는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 면담은 바쁜 분들이 하기에는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단지 만남으로 해서 성과는 어느 정도씩 생기는 것 같아 안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떠나갈 때 한국의 모대학 총장 일행이 결혼식용 백색 임대 리무진을 타고 왔다가 캠퍼스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배웅하는 호주 교수들이 한없이 부러운 표정 밑에 실망스러운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한국의 고위직 인사들까지도 외국의 관례를 몰라 심지어 골프장에서까지 복장 및 예절의 지적을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알아서 해야 업신여김을 안 당할 것이다. 촌스러운 코리언의 인상을 흔히 심어주는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현지 여건과 관습을 알고 대해야 제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할 얘기는, 호주에 한국인 이민 및 체류자가 적다 보니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망라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전문인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를 대충 엇맡아서 전문가연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불필요한 잡음이 한국인 사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호주인 사회까지도 새어 나가게 되어 끝내 한국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비전문인일수록 자신의 방어를 위해 전문성을 부르짖되 그 내용은 모르므로 무리하게 권위적 태도로 자기도취에 빠지게 된다. 이 증세는 왜 자기를 알주지들 않는가 하는 대사회불만증으로 발전해 즐거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학 국제회의나 한국어 교육 및 시험에 관한 여러 일에 관여하면서도 이런 경우를 흔히 보았다. 다른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들도 양상은 똑 같을 것이다. 공자님 말씀에“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일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몰라보는 일을 두려워하라.”는 내용은 옳고도 옳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두려운 마음으로 남긴다. 글쓰기는 역시 어렵다. (호주 동아일보 “시드니 광장‘ 199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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