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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音惡), 미술 (迷術) 그리고 문학(文虐)
Author
관리자
Date
2014-01-09
Views
42
음악(音惡), 미술 (迷術) 그리고 문학(文虐)
- 문화 하향평준화 시대의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이상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우리가 보통 듣는 음악이 시끄럽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하드 록부터일 것이다. 로큰롤보다 무겁고 볼륨이 강하며 직선적인 음악으로서 이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은 엘비스프레슬리가 1956년에 발표한 'Hound Dog'이었다. 전기 기타의 거친 사운드와 때려 부술 듯한 드럼 연주, 울부짖는 보컬을 커다란 음량으로 증폭시켜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드 록은 그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사운드가 현실에 대한 불만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더 나아가 헤비메탈로 변화하며 어두운 가사와 강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한때 팻 분의 음악이 지녔던 부드러운 위안적 흐름은 꺾이고 반항적인 비트 음악•사이키델릭록•펑크 록 등으로 보통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음악(音惡)이 젊은 귀를 뒤덮게 되어 버렸다. 요즘 필자는 매학기 약 30개 국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50명 가량의 외국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강의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다국적의 이 학생들은 서울대에 유학 온 것으로 보아 평균 이상의 교양을 가져야 할 그룹인데도 서양 고전음악에 대한 언급을 하면 베토벤조차 모른다는 투다.
고전적 품격의 진짜 음악이 사라진 시대
우리 국악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친근할 음악이라 믿고 서양 고전음악을 언급하면 전혀 반응이 없다. 오히려 K-Pop이나 강남스타일은 물론 잘 안다. 지금까지 7년째 계속해 온 영어 강의로 대학 자체에서도 전략적으로 권장하는 강의라서, 국악뿐 아니라 미술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언어 등을 두루 섭렵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그리고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소개하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범세계적으로 고전은 퇴조하고 음악(音惡)이 승하고 있음을 확인하니 씁쓸했다. 어느 새 세상은 바뀌어 전세계적으로 고전음악 레코드 감상실이나 고전 FM 방송이 풍기는 멋을 전혀 모르는 세대가 세상을 덮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그런 범세계적 풍토 속에서도 일부 학생들이 고전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을 쌓아가고 있으니 작은 위안이 된다. 필자가 독일에 2년간 연구교수로 가 있으면서 각 도시의 음대에서 연마하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접했고 그들이 모여 이루는 한인교회의 음악은 천상의 소리와 같은 화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이 아니라 K-Pop이나 강남스타일 정도의 음악이 우리의 주도로 퍼져나가 드넓은 소리의 공간을 채운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서양미술에서 추한 인물화를 뽑으라면 퀜틴마시스(Quentin Matsys•1466~1529)의 '그로테스크한 노파'가 대표격일 것이다. 늙은 뚱보의 못난 얼굴에 이상한 머리장식을 한 괴물은 플랑드르 화가 마시스의 대표작인데, 실제 인물은 아니고 에라스무스가 묘사한 '미치광이 노파'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미(美)를 추구하는 미술이 아니라 추술(醜術)이라 할 만하다.
▲ 도판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노파'(1513년경,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또한 과격한 에로티즘의 처절한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EgonSchiele, 1890-1918)의 그림들은 자유롭고 파격적인 드로잉 선 안에 숨겨진 욕망을 그리면서미(美)의 추구라기보다 추(醜)하기까지 한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감흥이 있다. 그러나 소위 현대화라는 일부 추상화들은 거무칙칙하고 더러운 형태로 그려져 드넓은 미술관 벽을 차지하며 보통사람들의 심미안과 판단력을 혼미하게 한다. 물론 실험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추구하는 현대화 경향을 다 싸잡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벽면을 더 넓게 차지한 현대 추상화의 일부는 보아서 아름답고 감흥이 있는 미술(美術)이 아니라, 전통적 미의 기준을 혼미하게 하는 미술(迷術)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 미의 기준을 흔든 미술(迷術)의 물결
요즘 행위예술이 광고적 퍼포먼스로도 행하여지기도 하는 바, 제품의 홍보를 위하여 전라의 여성 누드모델들이 요구르트를 몸에 뿌리는 전위 미술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음란죄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방에 있는 동지를 위해 젖가슴에 정치구호를 써서 사진 박아 인터넷으로 돌리는 행위는 음란조차 느껴지지도 못한다.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고 쓴 젖가슴 사진은 나꼼수라는 일종의 “전위(前衛) 즉 아방가르드 행위가 낳은 현상으로, 문화적 당위로 받아들여졌던 경계를 허무는 새 시도의 표현”이라 누가 강변했지만, 이번은 단지 관심을 끌려는 엽기적 미술(迷術)만 같아 보인다. 아예 이들이 미술적 행위라는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적 수준이 있는 화면을 볼 권리가 항상 있는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아마추어 화가로 어머님과 모자(母子)전시회를 감히 열었었는데 역시 보통 일반 관객들은 미술에서 기대하는 바가 일단 미적 수준을 갖춘 것이었다. 물론 미술이 아름다운 것만 보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려는 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문학도 몇 정치적 작가들이 요즘 부쩍 나서서 문(文)을 학대(虐待)하고 있다. 이런 문학 무대의 여성 인기작가라는 ○씨는 일등석이 없는 동경발 서울행 여객기에 누가 일등석을 탔다고 무작정 무고를 하다가 망신을 했다. 그런데 그런 요설의 소설가나마도 못 되고,‘가카 새끼’를 우습게 보는 판사도 못 되는, 과거 신학도였을 뿐인 김용민의 막말은 문제였다. 그의 입담은 문화 게릴라로 분노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노린 것이기는 하겠지만, 국회의원 후보로서의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총선에서 응징된 김용민의 막말 파동
그 결과는 국민이 심판한 총선 결과에서 엄격히 응징되었다. “우리처럼 담론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즉흥적 감상적 SNS는 정치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 한국 정치가 나꼼수식 막말이 지배하며 정치교수, 정치연예인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소신 있게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이 맞섰으면 좋겠다.” [전 노무현 대통령 김병준 정책보좌관의 말 인용]
말은 씨가 된다 했다. 막말 잘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골 때린다”는 말을 예사로 써서 국어정화를 옹호해야 하는 국어학자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더니 결국 “골 때리는” 낙하를 하며 그 금전적 흑막의 배후 스토리는 밝혀지지도 못하게 한 채 우리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더하게 하고 말았다. 우리의 이런 건전한 언어감각을 “완전히 생까(무시)해” 버리는 문성근 임시 대표의 ‘생까’식 말버릇도 결국 본인이 무시당하게 될 씨앗이 될 것이다.
시쳇말로 ‘돌직구’ 말버릇의 이정희는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받아 2억 이상을 이석기 회사에 지급했다니 이 무리들은 참으로 할 말이 없게 할 뿐이다. 참고로 문재인이 청와대에서 이석기를 거듭 복권시켰다 한다. 이 무리들은 종북의 포상으로 방북해서 핵세례나 받기를 기원하며, 또 어느 땐가는 진정한 배후 스토리도 밝히고, 스토리가 없다면 왜 골 때리며 낙하해야만 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꼭 알고 싶다. 우리가 낸 아까운 세금 수십억 원을 아주 잘못 쓰게 한 입법의원들도 모두 척결할 수 있는 날, 햇볕을 정말 쬐며 홍소를 짓고 싶다.
- 문화 하향평준화 시대의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이상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우리가 보통 듣는 음악이 시끄럽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하드 록부터일 것이다. 로큰롤보다 무겁고 볼륨이 강하며 직선적인 음악으로서 이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은 엘비스프레슬리가 1956년에 발표한 'Hound Dog'이었다. 전기 기타의 거친 사운드와 때려 부술 듯한 드럼 연주, 울부짖는 보컬을 커다란 음량으로 증폭시켜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드 록은 그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사운드가 현실에 대한 불만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더 나아가 헤비메탈로 변화하며 어두운 가사와 강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한때 팻 분의 음악이 지녔던 부드러운 위안적 흐름은 꺾이고 반항적인 비트 음악•사이키델릭록•펑크 록 등으로 보통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음악(音惡)이 젊은 귀를 뒤덮게 되어 버렸다. 요즘 필자는 매학기 약 30개 국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50명 가량의 외국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강의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다국적의 이 학생들은 서울대에 유학 온 것으로 보아 평균 이상의 교양을 가져야 할 그룹인데도 서양 고전음악에 대한 언급을 하면 베토벤조차 모른다는 투다.
고전적 품격의 진짜 음악이 사라진 시대
우리 국악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친근할 음악이라 믿고 서양 고전음악을 언급하면 전혀 반응이 없다. 오히려 K-Pop이나 강남스타일은 물론 잘 안다. 지금까지 7년째 계속해 온 영어 강의로 대학 자체에서도 전략적으로 권장하는 강의라서, 국악뿐 아니라 미술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언어 등을 두루 섭렵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그리고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소개하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범세계적으로 고전은 퇴조하고 음악(音惡)이 승하고 있음을 확인하니 씁쓸했다. 어느 새 세상은 바뀌어 전세계적으로 고전음악 레코드 감상실이나 고전 FM 방송이 풍기는 멋을 전혀 모르는 세대가 세상을 덮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그런 범세계적 풍토 속에서도 일부 학생들이 고전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을 쌓아가고 있으니 작은 위안이 된다. 필자가 독일에 2년간 연구교수로 가 있으면서 각 도시의 음대에서 연마하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접했고 그들이 모여 이루는 한인교회의 음악은 천상의 소리와 같은 화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이 아니라 K-Pop이나 강남스타일 정도의 음악이 우리의 주도로 퍼져나가 드넓은 소리의 공간을 채운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서양미술에서 추한 인물화를 뽑으라면 퀜틴마시스(Quentin Matsys•1466~1529)의 '그로테스크한 노파'가 대표격일 것이다. 늙은 뚱보의 못난 얼굴에 이상한 머리장식을 한 괴물은 플랑드르 화가 마시스의 대표작인데, 실제 인물은 아니고 에라스무스가 묘사한 '미치광이 노파'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미(美)를 추구하는 미술이 아니라 추술(醜術)이라 할 만하다.
▲ 도판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노파'(1513년경,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또한 과격한 에로티즘의 처절한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EgonSchiele, 1890-1918)의 그림들은 자유롭고 파격적인 드로잉 선 안에 숨겨진 욕망을 그리면서미(美)의 추구라기보다 추(醜)하기까지 한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감흥이 있다. 그러나 소위 현대화라는 일부 추상화들은 거무칙칙하고 더러운 형태로 그려져 드넓은 미술관 벽을 차지하며 보통사람들의 심미안과 판단력을 혼미하게 한다. 물론 실험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추구하는 현대화 경향을 다 싸잡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벽면을 더 넓게 차지한 현대 추상화의 일부는 보아서 아름답고 감흥이 있는 미술(美術)이 아니라, 전통적 미의 기준을 혼미하게 하는 미술(迷術)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 미의 기준을 흔든 미술(迷術)의 물결
요즘 행위예술이 광고적 퍼포먼스로도 행하여지기도 하는 바, 제품의 홍보를 위하여 전라의 여성 누드모델들이 요구르트를 몸에 뿌리는 전위 미술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음란죄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방에 있는 동지를 위해 젖가슴에 정치구호를 써서 사진 박아 인터넷으로 돌리는 행위는 음란조차 느껴지지도 못한다.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고 쓴 젖가슴 사진은 나꼼수라는 일종의 “전위(前衛) 즉 아방가르드 행위가 낳은 현상으로, 문화적 당위로 받아들여졌던 경계를 허무는 새 시도의 표현”이라 누가 강변했지만, 이번은 단지 관심을 끌려는 엽기적 미술(迷術)만 같아 보인다. 아예 이들이 미술적 행위라는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적 수준이 있는 화면을 볼 권리가 항상 있는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아마추어 화가로 어머님과 모자(母子)전시회를 감히 열었었는데 역시 보통 일반 관객들은 미술에서 기대하는 바가 일단 미적 수준을 갖춘 것이었다. 물론 미술이 아름다운 것만 보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려는 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문학도 몇 정치적 작가들이 요즘 부쩍 나서서 문(文)을 학대(虐待)하고 있다. 이런 문학 무대의 여성 인기작가라는 ○씨는 일등석이 없는 동경발 서울행 여객기에 누가 일등석을 탔다고 무작정 무고를 하다가 망신을 했다. 그런데 그런 요설의 소설가나마도 못 되고,‘가카 새끼’를 우습게 보는 판사도 못 되는, 과거 신학도였을 뿐인 김용민의 막말은 문제였다. 그의 입담은 문화 게릴라로 분노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노린 것이기는 하겠지만, 국회의원 후보로서의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총선에서 응징된 김용민의 막말 파동
그 결과는 국민이 심판한 총선 결과에서 엄격히 응징되었다. “우리처럼 담론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즉흥적 감상적 SNS는 정치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 한국 정치가 나꼼수식 막말이 지배하며 정치교수, 정치연예인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소신 있게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이 맞섰으면 좋겠다.” [전 노무현 대통령 김병준 정책보좌관의 말 인용]
말은 씨가 된다 했다. 막말 잘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골 때린다”는 말을 예사로 써서 국어정화를 옹호해야 하는 국어학자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더니 결국 “골 때리는” 낙하를 하며 그 금전적 흑막의 배후 스토리는 밝혀지지도 못하게 한 채 우리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더하게 하고 말았다. 우리의 이런 건전한 언어감각을 “완전히 생까(무시)해” 버리는 문성근 임시 대표의 ‘생까’식 말버릇도 결국 본인이 무시당하게 될 씨앗이 될 것이다.
시쳇말로 ‘돌직구’ 말버릇의 이정희는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받아 2억 이상을 이석기 회사에 지급했다니 이 무리들은 참으로 할 말이 없게 할 뿐이다. 참고로 문재인이 청와대에서 이석기를 거듭 복권시켰다 한다. 이 무리들은 종북의 포상으로 방북해서 핵세례나 받기를 기원하며, 또 어느 땐가는 진정한 배후 스토리도 밝히고, 스토리가 없다면 왜 골 때리며 낙하해야만 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꼭 알고 싶다. 우리가 낸 아까운 세금 수십억 원을 아주 잘못 쓰게 한 입법의원들도 모두 척결할 수 있는 날, 햇볕을 정말 쬐며 홍소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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