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한국문화
ANTHOLOGY
국제화와 국수주의, 개혁과 보수: 언어학 상식에 따른 해설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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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미국 CIA가 편찬한 세계역사지도"가 큰 도서관 지도실에 가면 있다. 필자는 70년대 유학 중 매서추세츠 대학에서 미언어학회 여름 특강을 듣다가 평소 좋아하는 지도 훑기를 하러 들어갔었다. 책상 위에 뽑혀 나와 있던 큰 책 중의 하나에 CIA란 이름이 보이길래 흥미를 돋우며 들쳐 보다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부분을 주목하며 죽 넘겨갔는데 칠한 색깔이 계속 중국과 같았다. 거의 뒷장에 가서 1897년부터 1910년간만 다른 색깔을 칠했던 것이다. 다시 앞뒤를 점검해보니 그 이전 기간은 죽 중국의 속국이었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반짝하다 망한 13년간만 독립국이었다는 해설이 붙어 있었다. 웬 식민사관(史觀)이냐고 항의하기 전에 필자는 한 한국학 학자로서 우리를 보는 외국의 왜곡된 시각을 통감했다.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는 미국이, 그것도 국제 지리적 사항을 보통 너무 모르는 일반시민도 아닌 정보기관의 관점이 그렇다면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viceroyship 즉 '총독의 지배지역'이었다는 것이니 아무리 조공을 바쳐오긴 했지만 한사군이 내내 계속 되었던 것처럼 간주해 버릴 수야 있겠는가? 그 뒤 미국에선 언어학 박사논문 쓰랴, 귀국 후는 학교 일에 쫓기랴 수정 요청도 못했으니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비교적 국수주의적 분위기가 짙은 국어학을 전공하다 보니까 국제적 감각이 없는 발언들에 휩싸여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지만 남의 생각도 모르면서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할 때가 많다. 2000년에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그런 식으로 외국인 사용자는 경시한 채 국내의 시각 위주로 치우친 것이었고, 심지어는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과도 더욱 거리가 멀어지는 조처를 강행한 꼴이 된 것이다. 또 정부의 몇 억 짜리 예산을 써가며 한국어의 국제화니 세계화를 촉진하는 사업들과 교육과정이 90년대 후반부터 각 단체, 대학교들의 유행 사업처럼 되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어 교육에 종사하는 교수가 전하는 바로는, "그 학위를 하고 온 어떤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 program을 국제경험이 제일 빈약하고 또 태도도 국수주의적이기 쉬운 국문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한다고 하고, 그것이 큰 문제라고 하더군요."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국어학자는 약간 국수주의적이며 고루한 듯하고, 무릇 규범에 따라 말을 곱게 하고 글을 바르게 쓰는 법이나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 정도로 대해 주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물론 학교교육 등에는 그런 규범적 기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의 본연적 생리를 알게 되면 이와 같은 통념은 아주 일부면만 대상으로 해서 잘못 형성한 것임을 알게 된다. 진정한 국어학자나 언어학자는 그렇게 좁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언어는 언어학자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체적으로 변화하며 자율성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국어학의 대가가 '우리말본' 같은 문법책에서 "벽보가 잘 보힌다/걸힌다"라고 써야 피동태가 된다고 규정했다고 "보인다/걸린다"가 "보힌다/걸힌다"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일반 문투 중에 "낙관적으로 보여진다"라는 피동표현은 많은 사용자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현대국어에 슬며시 등장한 것으로 보여진다.
언어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규약을 정해 공감하며 써야지 국어학자라도 결코 인위적으로 좌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언어 활동 속에는 말소리를 글로 적는 맞춤법 또는 철자법이 있다. 국어도 어느 만큼 그렇지만 영어의 경우은 발음과 철자가 너무 달라 몇 차례 철자 개혁 운동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일반인들이 관용해 오던 보수적 철자법에 너무 묶여 있어서 모든 시도가 다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다. knight가 옛날에는 그야말로 '크니흐트'로 실제 발음되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나이트'로 바뀌어 철자만 보고는 발음을 바로 낼 수 가 없지만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반면 북한 철자법의 원칙을 보면 발음관습에 역행하면서까지 원래 형태를 보이기 위해 '로동' 같은 새 표기법을 강행한 것이다. 소위 버들 '류'(柳)씨들도 마찬가지다. 개혁이 지나쳐 교왕과직(矯枉過直: 잘못을 바로 잡으려다 더 나쁘게 됨)을 범한 셈이다. 결국 균형있는 감각이 어디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는 미국이, 그것도 국제 지리적 사항을 보통 너무 모르는 일반시민도 아닌 정보기관의 관점이 그렇다면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viceroyship 즉 '총독의 지배지역'이었다는 것이니 아무리 조공을 바쳐오긴 했지만 한사군이 내내 계속 되었던 것처럼 간주해 버릴 수야 있겠는가? 그 뒤 미국에선 언어학 박사논문 쓰랴, 귀국 후는 학교 일에 쫓기랴 수정 요청도 못했으니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비교적 국수주의적 분위기가 짙은 국어학을 전공하다 보니까 국제적 감각이 없는 발언들에 휩싸여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지만 남의 생각도 모르면서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할 때가 많다. 2000년에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그런 식으로 외국인 사용자는 경시한 채 국내의 시각 위주로 치우친 것이었고, 심지어는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과도 더욱 거리가 멀어지는 조처를 강행한 꼴이 된 것이다. 또 정부의 몇 억 짜리 예산을 써가며 한국어의 국제화니 세계화를 촉진하는 사업들과 교육과정이 90년대 후반부터 각 단체, 대학교들의 유행 사업처럼 되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어 교육에 종사하는 교수가 전하는 바로는, "그 학위를 하고 온 어떤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 program을 국제경험이 제일 빈약하고 또 태도도 국수주의적이기 쉬운 국문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한다고 하고, 그것이 큰 문제라고 하더군요."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국어학자는 약간 국수주의적이며 고루한 듯하고, 무릇 규범에 따라 말을 곱게 하고 글을 바르게 쓰는 법이나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 정도로 대해 주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물론 학교교육 등에는 그런 규범적 기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의 본연적 생리를 알게 되면 이와 같은 통념은 아주 일부면만 대상으로 해서 잘못 형성한 것임을 알게 된다. 진정한 국어학자나 언어학자는 그렇게 좁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언어는 언어학자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체적으로 변화하며 자율성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국어학의 대가가 '우리말본' 같은 문법책에서 "벽보가 잘 보힌다/걸힌다"라고 써야 피동태가 된다고 규정했다고 "보인다/걸린다"가 "보힌다/걸힌다"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일반 문투 중에 "낙관적으로 보여진다"라는 피동표현은 많은 사용자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현대국어에 슬며시 등장한 것으로 보여진다.
언어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규약을 정해 공감하며 써야지 국어학자라도 결코 인위적으로 좌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언어 활동 속에는 말소리를 글로 적는 맞춤법 또는 철자법이 있다. 국어도 어느 만큼 그렇지만 영어의 경우은 발음과 철자가 너무 달라 몇 차례 철자 개혁 운동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일반인들이 관용해 오던 보수적 철자법에 너무 묶여 있어서 모든 시도가 다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다. knight가 옛날에는 그야말로 '크니흐트'로 실제 발음되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나이트'로 바뀌어 철자만 보고는 발음을 바로 낼 수 가 없지만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반면 북한 철자법의 원칙을 보면 발음관습에 역행하면서까지 원래 형태를 보이기 위해 '로동' 같은 새 표기법을 강행한 것이다. 소위 버들 '류'(柳)씨들도 마찬가지다. 개혁이 지나쳐 교왕과직(矯枉過直: 잘못을 바로 잡으려다 더 나쁘게 됨)을 범한 셈이다. 결국 균형있는 감각이 어디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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