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한국문화
ANTHOLOGY
로마자 표기법은 사용자 위주로
Author
관리자
Date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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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지난 5월 6일에 있었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공청회를 참관하고서 느낀 안타까움은 우리가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사용자 위주의 배려를 하는 데 아직 미숙하다는 점이었다. 쓸만한 표기법이 갖춰야 할 요건은 그 속에 더 많은 정보를 담으면서 사용하기도 쉬워야 한다는 이중적·복합적인 것이다.
‘한글 파동’을 겪으면서 현재의 형태 음소적 한글 맞춤법이 정착된 이유는 독해력을 높이는 정보를 많이 담으면서도 이미 국어를 잘 아는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좋다는 공동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해할 사용자의 입장을 위해 표기자가 많은 노력을 들여 복잡한 받침까지도 써 넣는 방식이었다. 이미 국어를 잘 말하는 대다수 독자로서는 발음에 큰 지장이 없었다. 또한 다수 독자가 소수의 표기자(필자) 덕을 보기도 하였다.
우리 국어는 본래 문법적 정보를 많이 표기하면 발음하기가 어렵다. 당장 문법적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아닌, 즉 뜻을 독해할 입장이 아닌 외국인들을 위해서는 표음 위주의 로마자 표기법이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발음한 결과를 우리가 쉽게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고 듣는 언어 사용자 쌍방이 다 배려된 방안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표음 위주의 표기법이 기록해 내기에 쉽지 않고 또 만족스럽게 발음을 재현해 내지 못한다는 염려에 있다. 기록하기 어려운 점은 소수의 표기자가 노력을 들이면 많은 사용자(독자)가 그 덕을 보게 되는 원리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 발음 재현의 불만스러움은 결국 다음에 말할 정도의 차이가 판정 기준이 된다.
공청회에서 음성학 전문가 등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가령 ㄱ, ㄲ, ㅋ 등을 현행 k, kk, k'보다 g, gg, k로 하자는 등의 글자 선택에는 열을 올렷지만, 현행안과 개정 제안의 핵심적 차이가 ‘독립문’을 현행 표음 위주 Tongnimmun에서 전자(轉字) 위주 Donglibmwun으로 고치는 데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현행안을 포기하면 단순히 글자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표음 위주의 원칙도 없어지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 봐도 자음 동화 및 중화 현상 등을 반영한 현행 표음주의 표기법이 원발음을 재현해 내는 정도가 탁월하게 높다고 할 것이다. 새 제안은 그 정도가 감히 비교도 못 할 지경으로 낮다는 것을 제안자들도 너무 잘 알 것이다(예. 벚꽃, 현행 ptkkot : 개정안 bejggoch 또는 beojggoch.).
로마자 표기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좀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로 표지만, 도서관 목록, 여권 등에서 실제로 한글을 옆에 함께 쓰고 있다. 영어 논문에서도 어떤 용어가 처음 나온 위치 또는 끝의 대조표 속에 한글과 로마자를 병기하는 것이 관례다. 결국 이러한 용도에서는 현행 로마자 표기 부분이 발음 기호로서의 역할을 하는 편의가 있다. 완벽한 기호 체계란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도의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만약 이 자리에 새 제안대로 전자법을 쓰면 그 결과는 한글을 이중으로 또 적은 꼴밖에 안 되는 터이다.
1984년 현행 로마자 표기법 제정 때 관여한 필자는 현행안 가운데 기호가 쓰이는 부분을 없애야 미구에 닥칠 전산화 시대에 편리할 것이라는 주장을 이미 한 바 있다. 다시 대안도 졸저 “국어 표기 4법 논의”에 수록되어 있듯이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그러나 현행안은 기호를 그대로 안고 쓰는 화근을 지니게 결정되어 전산화에 적잖은 짐을 지우게 되엇다. 물론 기회 삽입이 번거로운 정도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표음 위주의 현행안이 1대1 대응을 이용하려는 전산 작업에는 부적합하다는 데서 이번 개정의 불씨가 일기도 한 것이다. 전자법으로 하면 내국인이 주로 쓸 대량의 국어 자료 처리를 전산화하기 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문제를 사용자 위주의 관점에서 처리할 슬기를 발휘했으면 한다.
왜 로마자 표기법이 용도에 완연한 차이에 따라 두 가지가 설정되면 안 되란 법이 있는가? 전산 자료 처리용으로서는 새로 제안된 개정안이(현행안과 병행해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제안 중에 제 2안이 ‘ㅔ’를 e에 배정한 것은 표음적 배려라 볼 수 있는데 ‘ㄹ’은 동일한 2안에서 r과 l 둘 다 쓰는 표음 위주로 하지 않아, 결국 제 1안과 서로 뒤바뀐 자기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경계 표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ㄲ 등을 kk 등으로 또 ai를 ae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바다.
로마자 표기 개정이 외국의 지도상에 지명 표기하는 일까지 공연히 혼란하게 하고, 또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서관 한국 사서들을 망연자실케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외국의 대부분 한국학자들은 전자 우편으로 현행안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밀어붙이는’ 개혁 속에 꽤 많은 합리적 해결책을 묻어 버리고 더 나은 슬기로운 목소리를 막아 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는 근래 외국 대학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니까 철망을 치지 않고 또 하나의 지름길을 내 주어 큰길과 지름길이 다 잘 쓰이는 경우를 보았다. 사용자 위주의 합리적 해법이었다.
끝으로 남은 문제점은 상호나 개인 성명 표기에서 이미 널리 쓰여 결코 고치기 어려운 것들이다. Hyundai, Samsung, Daewoo등이 제각가 전세계에 굳혀 놓은 이름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자기 이름이 ‘석만’이니 ‘성만’으로 쓸 수 없고, ‘독문’과 ‘동문’을 구별할 수 없으면 큰 혼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거꾸로 ‘석만’이란 이름도 발음할 때는 ‘성만’으로 읽어야 한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을 주는 면이 있다. 만약 ‘석만’을 항용 일반인들이 자기 멋대로 표기하는 Suk-man 정도로 쓴다면 이 철자가 Suck-man 또는 Sucking man이란 욕설을 연상시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망신을 당하며 살게 될 것이다.
로마자 표기법을 다루면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사대주의’니 ‘무정부주의’니 하는 선동적 용어가 있다. McCune과 Reischauer라는 외국 학자가 만든 체재를 쓰면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20세기도 끝나가는 시대에 세계화를 외치는 정부에서 무슨 ‘사대주의’ 운운하며 걱정인가? 우리도 이만한 국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으면 이제는 합리적인 방안이 어느 것이냐만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남의 나라, 그것도 대국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반사대주의의 흑백 논리로 판단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읽기에 또 듣기에 좋은 현행안이 마침 외국 학자들의 안을 모태로 했다고 무조건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부족한 기능만 보완하는 별도의 전자법만 더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 1997. 7)
‘한글 파동’을 겪으면서 현재의 형태 음소적 한글 맞춤법이 정착된 이유는 독해력을 높이는 정보를 많이 담으면서도 이미 국어를 잘 아는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좋다는 공동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해할 사용자의 입장을 위해 표기자가 많은 노력을 들여 복잡한 받침까지도 써 넣는 방식이었다. 이미 국어를 잘 말하는 대다수 독자로서는 발음에 큰 지장이 없었다. 또한 다수 독자가 소수의 표기자(필자) 덕을 보기도 하였다.
우리 국어는 본래 문법적 정보를 많이 표기하면 발음하기가 어렵다. 당장 문법적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아닌, 즉 뜻을 독해할 입장이 아닌 외국인들을 위해서는 표음 위주의 로마자 표기법이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발음한 결과를 우리가 쉽게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고 듣는 언어 사용자 쌍방이 다 배려된 방안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표음 위주의 표기법이 기록해 내기에 쉽지 않고 또 만족스럽게 발음을 재현해 내지 못한다는 염려에 있다. 기록하기 어려운 점은 소수의 표기자가 노력을 들이면 많은 사용자(독자)가 그 덕을 보게 되는 원리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 발음 재현의 불만스러움은 결국 다음에 말할 정도의 차이가 판정 기준이 된다.
공청회에서 음성학 전문가 등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가령 ㄱ, ㄲ, ㅋ 등을 현행 k, kk, k'보다 g, gg, k로 하자는 등의 글자 선택에는 열을 올렷지만, 현행안과 개정 제안의 핵심적 차이가 ‘독립문’을 현행 표음 위주 Tongnimmun에서 전자(轉字) 위주 Donglibmwun으로 고치는 데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현행안을 포기하면 단순히 글자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표음 위주의 원칙도 없어지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 봐도 자음 동화 및 중화 현상 등을 반영한 현행 표음주의 표기법이 원발음을 재현해 내는 정도가 탁월하게 높다고 할 것이다. 새 제안은 그 정도가 감히 비교도 못 할 지경으로 낮다는 것을 제안자들도 너무 잘 알 것이다(예. 벚꽃, 현행 ptkkot : 개정안 bejggoch 또는 beojggoch.).
로마자 표기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좀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로 표지만, 도서관 목록, 여권 등에서 실제로 한글을 옆에 함께 쓰고 있다. 영어 논문에서도 어떤 용어가 처음 나온 위치 또는 끝의 대조표 속에 한글과 로마자를 병기하는 것이 관례다. 결국 이러한 용도에서는 현행 로마자 표기 부분이 발음 기호로서의 역할을 하는 편의가 있다. 완벽한 기호 체계란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정도의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만약 이 자리에 새 제안대로 전자법을 쓰면 그 결과는 한글을 이중으로 또 적은 꼴밖에 안 되는 터이다.
1984년 현행 로마자 표기법 제정 때 관여한 필자는 현행안 가운데 기호가 쓰이는 부분을 없애야 미구에 닥칠 전산화 시대에 편리할 것이라는 주장을 이미 한 바 있다. 다시 대안도 졸저 “국어 표기 4법 논의”에 수록되어 있듯이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그러나 현행안은 기호를 그대로 안고 쓰는 화근을 지니게 결정되어 전산화에 적잖은 짐을 지우게 되엇다. 물론 기회 삽입이 번거로운 정도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표음 위주의 현행안이 1대1 대응을 이용하려는 전산 작업에는 부적합하다는 데서 이번 개정의 불씨가 일기도 한 것이다. 전자법으로 하면 내국인이 주로 쓸 대량의 국어 자료 처리를 전산화하기 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문제를 사용자 위주의 관점에서 처리할 슬기를 발휘했으면 한다.
왜 로마자 표기법이 용도에 완연한 차이에 따라 두 가지가 설정되면 안 되란 법이 있는가? 전산 자료 처리용으로서는 새로 제안된 개정안이(현행안과 병행해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제안 중에 제 2안이 ‘ㅔ’를 e에 배정한 것은 표음적 배려라 볼 수 있는데 ‘ㄹ’은 동일한 2안에서 r과 l 둘 다 쓰는 표음 위주로 하지 않아, 결국 제 1안과 서로 뒤바뀐 자기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경계 표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ㄲ 등을 kk 등으로 또 ai를 ae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바다.
로마자 표기 개정이 외국의 지도상에 지명 표기하는 일까지 공연히 혼란하게 하고, 또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서관 한국 사서들을 망연자실케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외국의 대부분 한국학자들은 전자 우편으로 현행안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밀어붙이는’ 개혁 속에 꽤 많은 합리적 해결책을 묻어 버리고 더 나은 슬기로운 목소리를 막아 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는 근래 외국 대학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니까 철망을 치지 않고 또 하나의 지름길을 내 주어 큰길과 지름길이 다 잘 쓰이는 경우를 보았다. 사용자 위주의 합리적 해법이었다.
끝으로 남은 문제점은 상호나 개인 성명 표기에서 이미 널리 쓰여 결코 고치기 어려운 것들이다. Hyundai, Samsung, Daewoo등이 제각가 전세계에 굳혀 놓은 이름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자기 이름이 ‘석만’이니 ‘성만’으로 쓸 수 없고, ‘독문’과 ‘동문’을 구별할 수 없으면 큰 혼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거꾸로 ‘석만’이란 이름도 발음할 때는 ‘성만’으로 읽어야 한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을 주는 면이 있다. 만약 ‘석만’을 항용 일반인들이 자기 멋대로 표기하는 Suk-man 정도로 쓴다면 이 철자가 Suck-man 또는 Sucking man이란 욕설을 연상시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망신을 당하며 살게 될 것이다.
로마자 표기법을 다루면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사대주의’니 ‘무정부주의’니 하는 선동적 용어가 있다. McCune과 Reischauer라는 외국 학자가 만든 체재를 쓰면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20세기도 끝나가는 시대에 세계화를 외치는 정부에서 무슨 ‘사대주의’ 운운하며 걱정인가? 우리도 이만한 국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으면 이제는 합리적인 방안이 어느 것이냐만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남의 나라, 그것도 대국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반사대주의의 흑백 논리로 판단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읽기에 또 듣기에 좋은 현행안이 마침 외국 학자들의 안을 모태로 했다고 무조건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부족한 기능만 보완하는 별도의 전자법만 더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 199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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