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견문록

ANTHOLOGY

독을 뺀 전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3-22
조회
61
지난 8월 초순 중국 본토를 열흘간 훑어(또는 대충 핥아) 보고 올 기회가 있었다. 만리장성과 태산이 있는 산간지역도 여정에 포함되었지만, 주로 광막한 중원평야를 밤낮으로 달리는 기차도 타보았다. 그 큰 땅덩이를 부분적으로나마 맛보기에는 너무 짧은 일정이었다. 그러나 북경·청도·상해를 잇는 삼각지역 일대는 대충 살펴본 셈이고 제한된 경험을 어느 정도 쌓았다.

학생 25명을 포함한 우리 일행 30명은 각자 여러 가지 감흥을 안고 돌아왔다. 여행 중에도 서로 직감적인 판단과 추측을 주고 받으며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이야기하였고 돌아온 뒤에도 모여 앉을 기회를 이미 가졌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일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꼽아보니, 공자님의 유적이 있는 곡부(曲阜)를 둘러보고 오던 길에 제남(濟南市經五路小緯二路)의 利源飯店에서 먹은 점심메뉴가 특이하게 떠오른다.

보통 맛볼 수 없는 것만 추리면, 油炸金蟬(매미튀김), 炸全蝎(전갈튀김), 香鳩子(비둘기구이) 등이다. 웨이트리스의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매미도 음식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일행들은 다시 전갈 접시 앞에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필담으로 「除毒」임을 확인하고 시식을 하였지만, 이 전갈튀김은 마치 우리 여행의 실체를 상징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중국은 현재 관광수입을 위해 천안문광장의 탱크 자국이 지워지지도 않은 채 외국인들을 맞고 있다. 이 현실은 평화의 새인 비둘기도 외화획득전쟁에 동원하고 독만 빼면 전갈도 먹일 수 있다는 그들의 생활관습과도 무관하지는 않은 듯 하다.

6·25동란 이후 중국은 많이 변하여 우리에게 독없는 전갈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유학시 대학도서관에서 본 한 지도 도면이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에 의거, 미국 CIA가 편찬한 역사지도에, 한반도는 유사 이래 대한제국 선포(1897)때까지 중국의 속령(Viceroy 국가)으로 같은 색깔이 칠해져 있었던 사실이다. 적어도 이러한 사관(史觀)은 우리가 기억해 둬야 할 일이다. (1989.8.30. 조선일보 ‘一事一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