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
ANTHOLOGY
해운대 연가(戀歌)와 비가(悲歌) 및 ‘내모남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5-12
조회
170
2021, 해운대 연가(戀歌)와 비가(悲歌) 및 ‘내모남빌’,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17: 302-310
1. 축제
서울 태생에다가 부산 피난 시기와 해외 체류 기간만 빼고는 쭉 서울에 살아왔던 처지에 해운대에 대한 연가(戀歌)와 비가(悲歌)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꽤 오래 살아 보니 정작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 좋은 점을 잘 모른다. 특히 해운대에 계속 살아온 사람은 해운대의 좋은 점 을 잘 모르고 산다. 필자는 유학과 초빙교수 등의 일로 해외에서 14년을 살면서 그럭저럭 104개국을 다녀 보았는데, 그 경험으로 현재의 해운대에서 누릴 수 있는 생활 조건은 세계 어느 곳보다 좋다고 판단된다. 특히 한국 사람에게 맞는 음식과 관습 등으로 보면 다른 어느 나라도 제공할 수 없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현재 해운대 마린시티 지역에는 외국인도 많이 와 살고 있다. 한국인에게만 좋은 수준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꽤 생활 조건이 우수하다는 반 증이다.
서울은 좋은 병원을 비롯해 여러 시설 여건이 한국에서 물론 최상급이다. 반면 부산은 의 료 서비스에서 전국 최저라지만, 그래도 해운대에는 큰 종합병원이 있어 믿고 다닐 만하다. 다만 화랑, 미술관은 많지만 서울에서 열렸던 전시회가 다 내려오지 않는 것이 미술을 향유 하고 싶은 마음에 꽤 아쉽다.
올해같이 무더위가 계속되는 경우, 여름철 기간이 서울은 140일, 부산은 123일이라고 한 다. 여름에 상대적으로 시원할 뿐 아니라 겨울에도 보통 5~6도씩 서울보다 따뜻하다. 공기 오염도 배에서 연기가 많이 나오는 부산 본항 쪽보다 해운대 바닷가는 한국 내에서 손꼽히게 깨끗할 것이다. 이렇게 자연환경도 아주 좋은데다가 또 주거비도 싸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 (PIR, Price to Income Ratio)이 전 세계 최고인 홍콩의 리펄스베이 같은 특급 주거지나, LA에 서 선망하는 말리브 지역보다 한국인에게는 해운대가 마음 편하다.
게다가 서울에서 해운대를 하루 낮 시간 다녀만 가는 데도 최소 10만 원을 기차 삯으로 써 야 하고, 가장 값싼 곳이라도 일박하자면 총 20만 원 이상의 교통, 숙박, 식비를 써야 할 지경 이다. 그러니 여기 사는 것만으로도 하루 최소 10만 원 이상씩 버는 셈이라고 이웃들에게 말한 다. 따뜻한 날씨만 아니라 해운대 일대는 관광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 항상 즐겁게 들떠 지 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행사와 축제에 불꽃놀이도 잦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꽃놀이 얘기가 나왔으니, 해운대 고층 건물에서 남쪽을 보면 맑은 날은 대마도가 빤히 보이는 것을 오래 산 뒤에 알게 되었고, 그쪽에서 광안리 불꽃놀이를 찍은 사진도 인터넷[부 산불꽃축제 — 나무위키]에 있다. “일본 대마도에서도 잘 보여 남의 나라 축제를 관광 상품으 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거리가 약 50km라 불꽃이 먼저 보이고 2분 30초 후에 소리가 들린 다. 단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멀어 빛의 산란 때문에 저녁노을처럼 대부분의 불꽃색이 적색, 주황색, 노란색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명예교수협의회 홈페이지(https://emeritus.snu.ac. kr)에 올라가는 PDF 파일에는 컬러로 업로드 될 예정]
2. 연고
나는 서울대학교 교수직 은퇴 후 3년째인 2012년부터 부산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와 살고 있다. 스스로 해운대(大)에 석좌(또는 단지 좌석)를 갖추고 명예교수 시대를 보내고 있다 말 한다. 대개 부산에 연고가 있어 온 줄 알고 짓궂은 친구는 세컨드가 있냐고 들이대는데, 나는 “약국에 가면 어디든 연고는 많다”고 대꾸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연고를 많이 바르고 살려는지, 연고를 전혀 무시한 내 사연을 들으면 황당할 것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계기는 단 순하다.
2009년 은퇴 직전 딸아이 회사에서 동백섬에 있는 조선비치호텔 숙박 쿠폰이 나와 모처럼 이곳에 와 잘 자고 보니, 옆쪽 마린시티라는 신개발지에 40층쯤 하는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여기 와서 살면 따뜻하고 경치가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그 아파트 전세 값을 물어 보니 부 산에서 최고가 지역이었다. 너무 비싼 전세 값에 놀라고 돌아오는 길모퉁이에 마침 모델하우 스가 있어 들러 보니 80층이나 올릴 최고 기록 아파트 빌딩인데 서울의 비슷한 최고층 아파 트 값보다 절반밖에 안 되었다. 전세보다 구입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쉽게 아파 트 전매가 되던 때라 큰 주저없이 손쉽게 한 채를 계약했다. 그런데 완공된 3년 후에는 모든 매매가 거의 동결되어 그 핑계를 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냥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이사로 최대 피해자는 딸네 집의 손자, 손녀들일 것이다. 아무래도 외할배와 외할미의 손길을 자주 타지 못하게 되고 딸도 급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제 발등을 찍었다’고 쿠폰 을 원망했다. 그런데 정작 최대 수혜자는 나 자신인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 겨울마다 싸늘 한 바람을 쐬고 나면 편두통이 생기던 악순환을 깨끗이 벗어나게 된 것이다. 현재도 그 증상 은 재발되지 않아 많이 준비해 온 두통약은 시효가 지난 채 소용이 없게 되었다.
3. 파도
사실 필자는 20대까지 살던 집이 ‘남산 한옥마을 도편수 이승업가’로 보존되어 있는 순 서 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부산까지 오게 된 동기에는 내가 추위를 싫어하는 것이 큰 작용을 했 다. 90년대에 한국학을 가르치러 3년간 초빙교수로 가 있던 호주 시드니대의 시절이 기후 상 내게 꽤 맞아서 은퇴 후 다시 가서 살자 했더니 외국 생활은 더 하기 싫다는 마누라와 타협 끝에 반도 동남단으로 오게 된 것이다. 제일 온화한 서귀포도 고려해 보았으나 교통편이 좋 지 않아, 은퇴 후 5년간 매주 서울대에 강의 출강도 할 겸 형편상 KTX가 직결된 부산으로 낙 착이 되었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비치는 아름답고 아담하다. 호주에서 4년 생활 중 임시로 몇 개월 살던 북부 시드니의 콜라로이 비치는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모래 해변 연속이었다. 매일 동 향집의 일출을 즐겼고, 밤에는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습을 작은 고기떼가 파도에 밀려온 줄 알고 버킷을 들고 바로 모래밭이 연결된 비치 하우스 밑으로 달려 내려갔던 일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빌딩이 너무 많아 달맞이 고개까지 덮어 버렸다. 이 고개 모습은 골 프장이 있었다는 옛 시절의 나무들을 보존했더라면 마치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딸린 다이 아몬드 헤드와 모습이 흡사했을 것인데 이미 빌딩들이 독버섯처럼 덮어 버렸다. 그러한 풍경 을 간단히 그려 보았고 최근 완공된 국내 두 번째 높은 101층짜리 LCT 빌딩도 그려 넣었다. 이 마천루는 10년 전에 그림을 처음 그릴 때는 없었기에 윤곽선만 추가하게 된 것이다. 조선비치호텔도 동백섬 앞에 정박한 크루즈선으로 둔갑시켜 패러디했다. 이 바닷가에서 인공물 들을 좀 빼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백섬 유람선 항구 앞의 신설 건물도 건축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에 해운대 앞바다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으면 오징어잡이 배들이 여전 히 집어등을 켜고 수평선 쪽에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동트는 아침이 되어 가면 배들이 철수 를 서둘러 해안 쪽으로 들어와 버리는 행렬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날이 훤히 다 갰는데 마 지막으로 통통대며 외로이 달려 들어오는 배 한 척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배 선장은 빚을 많 이 지고 여러 식구를 부양하느라 끝까지 그물 줄을 당기다가 늦은 도착으로 생선을 넘기는 시간을 못 맞출까 봐 저토록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겠지 하는 상념에 젖는다. 은근히 그 힘겨 운 파도를 일으키는 모습이 애처롭다.
4. 겸손
내가 사는 아파트는 58층이어서 눈 밑으로 헬리콥터가 지나갈 정도로 높다.
거고 사추 지만 계일 居高思墜 持滿戒溢
“높은 곳[지위]에 거하면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가득 찰 정도로 가졌으면 넘치는 것을 경 계하라.”
이 경구는 당 태종 때 예천명 비석에 새겨 놓은 것으로 겸손 검소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래 서 아버님께서 서예 연습하실 때 써 놓으신 족자를 아파트 피트네스 벽에 걸어 놓았더니 외 국인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그 뜻을 물어보고 이 고층 아파트에 맞는 명언이라고 했다. 그 러다가 최근 이사 온 현대미술을 전공했다는 여자가 경로당 같다고 트집 잡아 기어코 떼어 내고 말았다.
아파트가 크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산다. 플라스틱 용기를 이용해 화분을 만들어다 놓았더니 아파트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힐난했다. 마찬가지로 알뜰시장을 열어 특히 귀국 전 외국인들이 쓸 만한 물건을 처분케 하고 수익금을 갹출해 미화원의 청소복, 보안원의 손난로 라도 사 주었는데 이것도 고급 아파트에서 시장판을 벌였다고 잡음이 났다. 내가 하버드대에 서 공부할 때나, 시드니의 고급 동네에서 세 들어 살 때도 어디나 알뜰시장은 일상화되어 있 는 주말 풍속이었다.
마린시티에는 거제도의 조선 사업이 잘될 때 수많은 외국인 가족들이 살았다. 요즘 꽤 줄 었지만, 고등학생까지는 부산 쪽 외국인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비싼 아파트를 임대해 주었다. 그러다 대학생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거제도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이들 중 몇몇은 내게 한국어와 동양화 그리는 기초를 배웠고 귀국 후에도 연락을 해 온다.
5. 해운(海雲)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를 보면 이상한 곳들이 있다. 동백은 봄이 오면 거의 다 떨어져 있게 마련인데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라 노래한다. ‘꽃 지는 동백섬에’ 또는 ‘꽃 피 던 동백섬에’-- 이렇게 해야 현실에 맞다. 또한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라는 구절도 요 근래에는 연락선이 다닌 일이 없어, 과거 관부(關釜)연락선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하든지, 또 는 해방 후 귀국 길에 폭침당한 우키시마호에 탔다가 못 돌아오는 형제를 연상하려는 사람 마저 있다. 좌우간 요즘은 연락선 대신 관광선이 수시로 다닌다. 원래 작곡가 황선우가 1969 년 이 곡을 만들어 한 사람을 주었다가, 1972년 조용필이 ‘돌아와요 해운대에’로 불렀을 때까 지도 히트되지 못했으나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원제로 바꾸고 당시 재일교포 모국 방문이 활성화되면서 국민가요가 된 것이란다.
동백섬 가운데 정상에 오르면 최치원 동상이 있다. 당시 서울인 경주에서 6두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며 12세에 중국으로 가 9세기 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 이름을 날리고 귀국했으나 국내 정세 상 때를 만나 지 못한 천재로, 내 마음을 처연하게 한다. 해운대(海雲臺)라는 지명도 최치원의 자 (字)인 ‘해운(海雲)’에서 비롯되었다.
요즘 해운대 해변에는 옛날 바닷가 구름 을 한가히 바라보던 시절은 다 지나서 알록 달록한 파라솔 숲과 각종 소음이 일어나는 행사가 많다. 특히 록밴드가 아파트 쪽으로 무대를 설치하고 저음으로 늦은 밤까지 타 격을 해댈 때는 고통이다. 게다가 올해는 살인적 조명까지 쏘아 대기에, 구청에 무대 를 꼭 남향 바다 쪽을 향하는 조건으로 허 가하랬더니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해운대 비치의 야경은 일 품이어서 조명쇼가 벌어진 현장을 그려 보 았다(그림 3).
필자가 1951년 일사 후퇴 후 부산에 와 서 2년여를 살았을 때, 해운대는 좀처럼 오 기도 어려운 곳이었는데 지금은 새 중심지가 되어 비행장이 있던 수영강가 자리는 동양 최대 신세계백화점과 영화의 전당까지 들어섰다. 옛날 최치원은 해인사로 표표히 떠났다지만, 현
재에는 너무 많은 형제들이 구름같이 돌아와 해변을 채우고 있다.
6. 비가(悲歌)
이제까지 연가라는 제목 아래 듣기 좋은 찬가(讚歌)만 써 왔는데 어느 일에나 음양이 있게 마련이라 비가를 덧붙여야겠다.
요즘 2주택자는 엄청난 세금을 내도록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내 경우 서울에서 살던 집을 전세로 주고 받아온 돈으로 해운대 아파트를 살 수 있어서 그냥 살던 집과 사는 집 두 채를 지니게 됐을 뿐이지 투기하러 다닌 것은 아니다. 해운대가 좋아서 서울을 접고 와서 사는 사람에게, 부산을 기반으로 서울에 진출한 사람들이 오히려 핍박을 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되었 다. 최근에 강남에 진출한 투기꾼과 달리, 서울대 교수들은 75년 관악산 밑 풀밭에 교정이 이 전된 뒤 근처에 아파트가 없어 당시 변두리였던 구반포 지역에 새로 조성된 아파트에 정부에 서 우선적으로 살게 해 주었다. 그리해서 40여 년 지난 곳을 그냥 처음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 도 투기꾼이라니 안 팔았던 빌미가 해운대 생활을 못하게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경우를 잘 가리는 섬세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해운대 생활이 모두 쾌적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여름철 성수기에는 해변의 가설무대에서 뿜어 대는 베이스 음향과 살인적 조명 광선, 그리고 몰려오는 인파로 교통이 막힌다. 요즘 가 을에도 광안대교 위를 보면 아침에 특히 교통 체증이 심하며, 주말, 공휴일에만 출근이 없어 한산하다. 바다 위로 큰 도로들을 내도 교통량 증가를 못 따라간다.
교통 얘기 끝에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지역 장애인 주차 칸에는 유독 벤틀리, 롤스로이스, 마세라티, 포르쉐 등의 최고가 차들이 즐비하니 아마 가짜로 주차권을 사서 점유하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니 단속을 좀 받아야 할 것이다.
7. 애가(哀歌)
최근 모 TV 프로그램에서 동부산 편 중 마린시티 소개도 잘 되어 있었는데, 굳이 나쁜 점이 있다면 “휴양지 같아서”라고 탓하듯 하는 말을 덧붙였으나, 바로 비행기조차 안 타고 온 거리에서도 휴양하는 분위기로 살 수 있는 점이 이 일대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나도 요즘 서울대 교수수첩 주소란을 보니, 부산에 와서 사는 은퇴 교수가 더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 고 서울에 대한 미련과 연고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놀랐다. 하기는 나도 99세 되신 어머 님 뵈러 한 달에 한 번은 여전히 꼭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 덤으로 내가 창립한 지 36년 된 음 운론학회(구 음운론연구회, 외국 언어학박사 회원만 50여 명)의 월례 발표회에도 참석하고 온다. 그리고 여기가 낚시를 하기 좋은 여건이지만 그럴 짬은 없이 그림 그릴 시간 내기도 바 쁘게 살고 있다. 아직 휴양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얻지 못한 탓일 것이다. 앞 으로는 도를 닦듯 그런 경지로 향해야겠다. (2019. 10.)
[후첨] 위 글까지 써 놓은 후 지난 2년 사이에 큰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 기간에 더 악화된 부동산 사태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부산의 부동산은 적어도 2019년 10월 말까지는 10년간 전혀 오르지를 못했다. 그래서 2주택 종부세 부담도 크고 어차피 몇 년 후 요양 시설로 들어 가 해 주는 밥을 먹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파트를 팔아 버렸다. 집사람의 건강이 나빠져 살림하기가 좀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비를 했다. 다만 5년간 전세로 있을 수 있 도록 나름의 대안도 짜놓았다. 이사 다니는 일은 피하면서,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언제든지 떠 나자는 셈이었지만 상황은 전혀 의외로 돌아갔다. 매각 직후 선거 득표를 앞둔 전략으로 조 정지역 해제가 된 부산 아파트 값은 2년 새 두세 배로 오른 것이다. 아파트 값이 정권과 함께 미쳐 버린 것이다.
8. ‘내모남빌’(내 잘못은 모르쇠, 남 잘한 것 빌붙기)
아파트값이 정권과 함께 미쳐 버린 꼴이 되더니, 내게 더 정말 환장할 일은, 남양주 그린벨 트 지역에 100여 년 전부터 터 잡았던 선산을 제3기 신도시 지역으로 지정해 파헤치려는 것 이다. 오대조 위까지 봉분도 여럿이어서 납골묘로 간소하게 정비까지 해놓았는데, 현재 사는 집뿐만 아니라 후세에 살 집까지 뿌리째 흔들어 놓는 이 정권은 모든 정책이 하나하나 한결 같이 일사불란하게 잘못되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부터 부동산, 적폐청산 후 자기적폐 재생 산, 편 가르기 등 무엇 하나 잘해 놓은 것을 찾기 어렵다. 아직 몰라도 보신탕 금지 정도나 퍽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남지 않을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가장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상왕처럼 뒤에 방관하 듯 앉아 있고, GSKK*(-GG는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안 맞고, 억지로 General Good이라고 둘 러댄 것도 가소로운 식자우환이다)들이 앞에 방패로 막더니, 끝내 BTS까지도 행사 기획한다 는책사에잡혀가무를앞세워‘쇼통’을미화해모시는UN의큰자리에쓰였다. 또한국최초 자력 인공위성 궤도 진입 로켓 발사장에도 실무자들의 발표 자리까지 제치며 빠짐없이 얼굴 을 드러내 생색내기 바빴다. 이 현상을 4자성어로 요약하면 내모남빌(내 잘못은 모르쇠, 남 잘한 것 빌붙기)이다. 무능했던 못된 실체를 드러내놓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날도 얼 마 남지 않았는데, 마치 ‘동물농장’에서 양들에게 조사한 듯한 결과로 문빠 골수들의 인기도 가 높다며 사과도 없이 그대로 퇴장하려 한다.
집값을 못 잡은 원인 중의 하나는 서울 경기 중심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을 조정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여러 요인이 서로 엉켜 있는데, 특히 우선 좋은 직장들이 서울 중심 으로 몰려 있어 인재들이 지방으로 가려 하지 않게 되었다. 제2도시 부산에도 오래전부터 대 학생들조차 현지 직장을 찾기 어렵다고 서울이나 타지로 기웃거리게 되어, 점차 신규 대학생 모집도 점점 어려워 가는 경향을 보인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 하던 사람들이 어쩌다 서울 가서 부산 젊은이들의 인권을 이렇게 짓밟아 대는 치적을 남길 줄이야! 이렇게 여건이 나빠 지니 직장도 집도 못 얻어 결혼도 못하여 자연히 부산 인구는 줄어들고 특히 젊은 층이 빠져 나간다.
* 원래는꽤식자층에속해야할여당인사가현행로마자표기법도모른채욕지거리를감추려 GSGG라고 썼었는데 ‘-끼’는 –kk로 쓰는 것이 현행법에 맞다.
참고로 OECD 국가 수도권 집중도가 현재 영국 12%, 프랑스 19%, 일본 28%라는데 한국은 이미 1980년에 28%, 2020년 이후 50%란다. 이러니 지역 청년이 유출되어 수도권으로 집중 과밀화되고 주거와 취업 경쟁이 심각하게 되다 보니 비혼/만혼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급락하 여 인구 감소에 고령화가 심화되며 결국 지방은 순차적으로 거의 소멸하는 것이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이런 현상을 안듯 부산으로 와 서울 과밀 인구를 줄이고 2주택도 풀어 아예 무주택으로 정부에 협조했고 무리한 부동산 세금도 잘 내 왔는데 선산까지 털어 가니 기가 막힌다. 보통 납골 묘를 그대로 이전하는 것은 안 되고 새 묘지공원에서 규격 맞춰 만든 납골 묘를 새로 사야 한다는데 가격도 엄청나다. 심지어 납골당 대부분도 면적에 비해 턱없 이 비싸다. 코로나 시대에 면대면 없이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에 좋다 했더니, 공급은 막고 조 이기만한 졸렬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결과로 여기저기 묏자리를 알아보고 이전하는 데 아까 운 시간을 쓰게 되었다.
각설, 원자력발전소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오해에 휩싸여 처음에는 해운대에서 고리 원자 로가 너무 가깝기에 탈 원전을 꼭 해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형 원자로의 안전성과 유사 시도 폭발이 아니라 방사능이 새나오는 동안 여유 있는 대피 시간의 가능성 등을 원자력 공 학과 교수에게 듣고 난 뒤에는 안심하며 살게 되었다. 더구나 전기료 인상을 피하고, 장래 탄 소중립 정책에 더 맞는 원자력 발전은 더 증진시켜야 할 방안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원자력 산업을 위축시켜 놓아 전 세계가 원자로를 증설하려는 방향으로 가는 데도 한국형 원자로는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우수함도 살리지 못하고 모든 시장을 잃고 말게 되었다. ‘판 도라’ 영화 하나 잘못 본 인간이 미치는 막대한 폐해를 온 국민이 떠안고 그 원인 제공자에게 피해 보상도 못 받을 통탄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냥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나 보고 이 어리석 은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붙임] 코로나가 퍼져 외출과 모임도 못하여 전시회를 즐겨 가던 사람들이 거동을 삼가게 되었다. 필자도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며 큰 도시에 가게 되면 우선 미술관과 박물관부터 찾던 즐거움을 빼앗겼다. 그래서 “패러디의 즐거움: 문자·미술 감상 상(上)의 독창적 상상 (high-concept)”이라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sangoak33을 만들어 보았으니 대상 (代償)의 간식으로 조금씩 토막 열어 즐기시기 바란다.
1. 축제
서울 태생에다가 부산 피난 시기와 해외 체류 기간만 빼고는 쭉 서울에 살아왔던 처지에 해운대에 대한 연가(戀歌)와 비가(悲歌)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꽤 오래 살아 보니 정작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 좋은 점을 잘 모른다. 특히 해운대에 계속 살아온 사람은 해운대의 좋은 점 을 잘 모르고 산다. 필자는 유학과 초빙교수 등의 일로 해외에서 14년을 살면서 그럭저럭 104개국을 다녀 보았는데, 그 경험으로 현재의 해운대에서 누릴 수 있는 생활 조건은 세계 어느 곳보다 좋다고 판단된다. 특히 한국 사람에게 맞는 음식과 관습 등으로 보면 다른 어느 나라도 제공할 수 없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현재 해운대 마린시티 지역에는 외국인도 많이 와 살고 있다. 한국인에게만 좋은 수준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꽤 생활 조건이 우수하다는 반 증이다.
서울은 좋은 병원을 비롯해 여러 시설 여건이 한국에서 물론 최상급이다. 반면 부산은 의 료 서비스에서 전국 최저라지만, 그래도 해운대에는 큰 종합병원이 있어 믿고 다닐 만하다. 다만 화랑, 미술관은 많지만 서울에서 열렸던 전시회가 다 내려오지 않는 것이 미술을 향유 하고 싶은 마음에 꽤 아쉽다.
올해같이 무더위가 계속되는 경우, 여름철 기간이 서울은 140일, 부산은 123일이라고 한 다. 여름에 상대적으로 시원할 뿐 아니라 겨울에도 보통 5~6도씩 서울보다 따뜻하다. 공기 오염도 배에서 연기가 많이 나오는 부산 본항 쪽보다 해운대 바닷가는 한국 내에서 손꼽히게 깨끗할 것이다. 이렇게 자연환경도 아주 좋은데다가 또 주거비도 싸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 (PIR, Price to Income Ratio)이 전 세계 최고인 홍콩의 리펄스베이 같은 특급 주거지나, LA에 서 선망하는 말리브 지역보다 한국인에게는 해운대가 마음 편하다.
게다가 서울에서 해운대를 하루 낮 시간 다녀만 가는 데도 최소 10만 원을 기차 삯으로 써 야 하고, 가장 값싼 곳이라도 일박하자면 총 20만 원 이상의 교통, 숙박, 식비를 써야 할 지경 이다. 그러니 여기 사는 것만으로도 하루 최소 10만 원 이상씩 버는 셈이라고 이웃들에게 말한 다. 따뜻한 날씨만 아니라 해운대 일대는 관광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 항상 즐겁게 들떠 지 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행사와 축제에 불꽃놀이도 잦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꽃놀이 얘기가 나왔으니, 해운대 고층 건물에서 남쪽을 보면 맑은 날은 대마도가 빤히 보이는 것을 오래 산 뒤에 알게 되었고, 그쪽에서 광안리 불꽃놀이를 찍은 사진도 인터넷[부 산불꽃축제 — 나무위키]에 있다. “일본 대마도에서도 잘 보여 남의 나라 축제를 관광 상품으 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거리가 약 50km라 불꽃이 먼저 보이고 2분 30초 후에 소리가 들린 다. 단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멀어 빛의 산란 때문에 저녁노을처럼 대부분의 불꽃색이 적색, 주황색, 노란색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명예교수협의회 홈페이지(https://emeritus.snu.ac. kr)에 올라가는 PDF 파일에는 컬러로 업로드 될 예정]
2. 연고
나는 서울대학교 교수직 은퇴 후 3년째인 2012년부터 부산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와 살고 있다. 스스로 해운대(大)에 석좌(또는 단지 좌석)를 갖추고 명예교수 시대를 보내고 있다 말 한다. 대개 부산에 연고가 있어 온 줄 알고 짓궂은 친구는 세컨드가 있냐고 들이대는데, 나는 “약국에 가면 어디든 연고는 많다”고 대꾸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연고를 많이 바르고 살려는지, 연고를 전혀 무시한 내 사연을 들으면 황당할 것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계기는 단 순하다.
2009년 은퇴 직전 딸아이 회사에서 동백섬에 있는 조선비치호텔 숙박 쿠폰이 나와 모처럼 이곳에 와 잘 자고 보니, 옆쪽 마린시티라는 신개발지에 40층쯤 하는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여기 와서 살면 따뜻하고 경치가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그 아파트 전세 값을 물어 보니 부 산에서 최고가 지역이었다. 너무 비싼 전세 값에 놀라고 돌아오는 길모퉁이에 마침 모델하우 스가 있어 들러 보니 80층이나 올릴 최고 기록 아파트 빌딩인데 서울의 비슷한 최고층 아파 트 값보다 절반밖에 안 되었다. 전세보다 구입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쉽게 아파 트 전매가 되던 때라 큰 주저없이 손쉽게 한 채를 계약했다. 그런데 완공된 3년 후에는 모든 매매가 거의 동결되어 그 핑계를 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냥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이사로 최대 피해자는 딸네 집의 손자, 손녀들일 것이다. 아무래도 외할배와 외할미의 손길을 자주 타지 못하게 되고 딸도 급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제 발등을 찍었다’고 쿠폰 을 원망했다. 그런데 정작 최대 수혜자는 나 자신인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 겨울마다 싸늘 한 바람을 쐬고 나면 편두통이 생기던 악순환을 깨끗이 벗어나게 된 것이다. 현재도 그 증상 은 재발되지 않아 많이 준비해 온 두통약은 시효가 지난 채 소용이 없게 되었다.
3. 파도
사실 필자는 20대까지 살던 집이 ‘남산 한옥마을 도편수 이승업가’로 보존되어 있는 순 서 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부산까지 오게 된 동기에는 내가 추위를 싫어하는 것이 큰 작용을 했 다. 90년대에 한국학을 가르치러 3년간 초빙교수로 가 있던 호주 시드니대의 시절이 기후 상 내게 꽤 맞아서 은퇴 후 다시 가서 살자 했더니 외국 생활은 더 하기 싫다는 마누라와 타협 끝에 반도 동남단으로 오게 된 것이다. 제일 온화한 서귀포도 고려해 보았으나 교통편이 좋 지 않아, 은퇴 후 5년간 매주 서울대에 강의 출강도 할 겸 형편상 KTX가 직결된 부산으로 낙 착이 되었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비치는 아름답고 아담하다. 호주에서 4년 생활 중 임시로 몇 개월 살던 북부 시드니의 콜라로이 비치는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모래 해변 연속이었다. 매일 동 향집의 일출을 즐겼고, 밤에는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습을 작은 고기떼가 파도에 밀려온 줄 알고 버킷을 들고 바로 모래밭이 연결된 비치 하우스 밑으로 달려 내려갔던 일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빌딩이 너무 많아 달맞이 고개까지 덮어 버렸다. 이 고개 모습은 골 프장이 있었다는 옛 시절의 나무들을 보존했더라면 마치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딸린 다이 아몬드 헤드와 모습이 흡사했을 것인데 이미 빌딩들이 독버섯처럼 덮어 버렸다. 그러한 풍경 을 간단히 그려 보았고 최근 완공된 국내 두 번째 높은 101층짜리 LCT 빌딩도 그려 넣었다. 이 마천루는 10년 전에 그림을 처음 그릴 때는 없었기에 윤곽선만 추가하게 된 것이다. 조선비치호텔도 동백섬 앞에 정박한 크루즈선으로 둔갑시켜 패러디했다. 이 바닷가에서 인공물 들을 좀 빼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백섬 유람선 항구 앞의 신설 건물도 건축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에 해운대 앞바다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으면 오징어잡이 배들이 여전 히 집어등을 켜고 수평선 쪽에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동트는 아침이 되어 가면 배들이 철수 를 서둘러 해안 쪽으로 들어와 버리는 행렬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날이 훤히 다 갰는데 마 지막으로 통통대며 외로이 달려 들어오는 배 한 척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배 선장은 빚을 많 이 지고 여러 식구를 부양하느라 끝까지 그물 줄을 당기다가 늦은 도착으로 생선을 넘기는 시간을 못 맞출까 봐 저토록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겠지 하는 상념에 젖는다. 은근히 그 힘겨 운 파도를 일으키는 모습이 애처롭다.
4. 겸손
내가 사는 아파트는 58층이어서 눈 밑으로 헬리콥터가 지나갈 정도로 높다.
거고 사추 지만 계일 居高思墜 持滿戒溢
“높은 곳[지위]에 거하면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가득 찰 정도로 가졌으면 넘치는 것을 경 계하라.”
이 경구는 당 태종 때 예천명 비석에 새겨 놓은 것으로 겸손 검소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래 서 아버님께서 서예 연습하실 때 써 놓으신 족자를 아파트 피트네스 벽에 걸어 놓았더니 외 국인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그 뜻을 물어보고 이 고층 아파트에 맞는 명언이라고 했다. 그 러다가 최근 이사 온 현대미술을 전공했다는 여자가 경로당 같다고 트집 잡아 기어코 떼어 내고 말았다.
아파트가 크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산다. 플라스틱 용기를 이용해 화분을 만들어다 놓았더니 아파트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힐난했다. 마찬가지로 알뜰시장을 열어 특히 귀국 전 외국인들이 쓸 만한 물건을 처분케 하고 수익금을 갹출해 미화원의 청소복, 보안원의 손난로 라도 사 주었는데 이것도 고급 아파트에서 시장판을 벌였다고 잡음이 났다. 내가 하버드대에 서 공부할 때나, 시드니의 고급 동네에서 세 들어 살 때도 어디나 알뜰시장은 일상화되어 있 는 주말 풍속이었다.
마린시티에는 거제도의 조선 사업이 잘될 때 수많은 외국인 가족들이 살았다. 요즘 꽤 줄 었지만, 고등학생까지는 부산 쪽 외국인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비싼 아파트를 임대해 주었다. 그러다 대학생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거제도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이들 중 몇몇은 내게 한국어와 동양화 그리는 기초를 배웠고 귀국 후에도 연락을 해 온다.
5. 해운(海雲)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를 보면 이상한 곳들이 있다. 동백은 봄이 오면 거의 다 떨어져 있게 마련인데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라 노래한다. ‘꽃 지는 동백섬에’ 또는 ‘꽃 피 던 동백섬에’-- 이렇게 해야 현실에 맞다. 또한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라는 구절도 요 근래에는 연락선이 다닌 일이 없어, 과거 관부(關釜)연락선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하든지, 또 는 해방 후 귀국 길에 폭침당한 우키시마호에 탔다가 못 돌아오는 형제를 연상하려는 사람 마저 있다. 좌우간 요즘은 연락선 대신 관광선이 수시로 다닌다. 원래 작곡가 황선우가 1969 년 이 곡을 만들어 한 사람을 주었다가, 1972년 조용필이 ‘돌아와요 해운대에’로 불렀을 때까 지도 히트되지 못했으나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원제로 바꾸고 당시 재일교포 모국 방문이 활성화되면서 국민가요가 된 것이란다.
동백섬 가운데 정상에 오르면 최치원 동상이 있다. 당시 서울인 경주에서 6두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며 12세에 중국으로 가 9세기 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 이름을 날리고 귀국했으나 국내 정세 상 때를 만나 지 못한 천재로, 내 마음을 처연하게 한다. 해운대(海雲臺)라는 지명도 최치원의 자 (字)인 ‘해운(海雲)’에서 비롯되었다.
요즘 해운대 해변에는 옛날 바닷가 구름 을 한가히 바라보던 시절은 다 지나서 알록 달록한 파라솔 숲과 각종 소음이 일어나는 행사가 많다. 특히 록밴드가 아파트 쪽으로 무대를 설치하고 저음으로 늦은 밤까지 타 격을 해댈 때는 고통이다. 게다가 올해는 살인적 조명까지 쏘아 대기에, 구청에 무대 를 꼭 남향 바다 쪽을 향하는 조건으로 허 가하랬더니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해운대 비치의 야경은 일 품이어서 조명쇼가 벌어진 현장을 그려 보 았다(그림 3).
필자가 1951년 일사 후퇴 후 부산에 와 서 2년여를 살았을 때, 해운대는 좀처럼 오 기도 어려운 곳이었는데 지금은 새 중심지가 되어 비행장이 있던 수영강가 자리는 동양 최대 신세계백화점과 영화의 전당까지 들어섰다. 옛날 최치원은 해인사로 표표히 떠났다지만, 현
재에는 너무 많은 형제들이 구름같이 돌아와 해변을 채우고 있다.
6. 비가(悲歌)
이제까지 연가라는 제목 아래 듣기 좋은 찬가(讚歌)만 써 왔는데 어느 일에나 음양이 있게 마련이라 비가를 덧붙여야겠다.
요즘 2주택자는 엄청난 세금을 내도록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내 경우 서울에서 살던 집을 전세로 주고 받아온 돈으로 해운대 아파트를 살 수 있어서 그냥 살던 집과 사는 집 두 채를 지니게 됐을 뿐이지 투기하러 다닌 것은 아니다. 해운대가 좋아서 서울을 접고 와서 사는 사람에게, 부산을 기반으로 서울에 진출한 사람들이 오히려 핍박을 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되었 다. 최근에 강남에 진출한 투기꾼과 달리, 서울대 교수들은 75년 관악산 밑 풀밭에 교정이 이 전된 뒤 근처에 아파트가 없어 당시 변두리였던 구반포 지역에 새로 조성된 아파트에 정부에 서 우선적으로 살게 해 주었다. 그리해서 40여 년 지난 곳을 그냥 처음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 도 투기꾼이라니 안 팔았던 빌미가 해운대 생활을 못하게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경우를 잘 가리는 섬세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해운대 생활이 모두 쾌적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여름철 성수기에는 해변의 가설무대에서 뿜어 대는 베이스 음향과 살인적 조명 광선, 그리고 몰려오는 인파로 교통이 막힌다. 요즘 가 을에도 광안대교 위를 보면 아침에 특히 교통 체증이 심하며, 주말, 공휴일에만 출근이 없어 한산하다. 바다 위로 큰 도로들을 내도 교통량 증가를 못 따라간다.
교통 얘기 끝에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지역 장애인 주차 칸에는 유독 벤틀리, 롤스로이스, 마세라티, 포르쉐 등의 최고가 차들이 즐비하니 아마 가짜로 주차권을 사서 점유하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니 단속을 좀 받아야 할 것이다.
7. 애가(哀歌)
최근 모 TV 프로그램에서 동부산 편 중 마린시티 소개도 잘 되어 있었는데, 굳이 나쁜 점이 있다면 “휴양지 같아서”라고 탓하듯 하는 말을 덧붙였으나, 바로 비행기조차 안 타고 온 거리에서도 휴양하는 분위기로 살 수 있는 점이 이 일대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나도 요즘 서울대 교수수첩 주소란을 보니, 부산에 와서 사는 은퇴 교수가 더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 고 서울에 대한 미련과 연고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놀랐다. 하기는 나도 99세 되신 어머 님 뵈러 한 달에 한 번은 여전히 꼭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 덤으로 내가 창립한 지 36년 된 음 운론학회(구 음운론연구회, 외국 언어학박사 회원만 50여 명)의 월례 발표회에도 참석하고 온다. 그리고 여기가 낚시를 하기 좋은 여건이지만 그럴 짬은 없이 그림 그릴 시간 내기도 바 쁘게 살고 있다. 아직 휴양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얻지 못한 탓일 것이다. 앞 으로는 도를 닦듯 그런 경지로 향해야겠다. (2019. 10.)
[후첨] 위 글까지 써 놓은 후 지난 2년 사이에 큰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 기간에 더 악화된 부동산 사태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부산의 부동산은 적어도 2019년 10월 말까지는 10년간 전혀 오르지를 못했다. 그래서 2주택 종부세 부담도 크고 어차피 몇 년 후 요양 시설로 들어 가 해 주는 밥을 먹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파트를 팔아 버렸다. 집사람의 건강이 나빠져 살림하기가 좀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비를 했다. 다만 5년간 전세로 있을 수 있 도록 나름의 대안도 짜놓았다. 이사 다니는 일은 피하면서,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언제든지 떠 나자는 셈이었지만 상황은 전혀 의외로 돌아갔다. 매각 직후 선거 득표를 앞둔 전략으로 조 정지역 해제가 된 부산 아파트 값은 2년 새 두세 배로 오른 것이다. 아파트 값이 정권과 함께 미쳐 버린 것이다.
8. ‘내모남빌’(내 잘못은 모르쇠, 남 잘한 것 빌붙기)
아파트값이 정권과 함께 미쳐 버린 꼴이 되더니, 내게 더 정말 환장할 일은, 남양주 그린벨 트 지역에 100여 년 전부터 터 잡았던 선산을 제3기 신도시 지역으로 지정해 파헤치려는 것 이다. 오대조 위까지 봉분도 여럿이어서 납골묘로 간소하게 정비까지 해놓았는데, 현재 사는 집뿐만 아니라 후세에 살 집까지 뿌리째 흔들어 놓는 이 정권은 모든 정책이 하나하나 한결 같이 일사불란하게 잘못되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부터 부동산, 적폐청산 후 자기적폐 재생 산, 편 가르기 등 무엇 하나 잘해 놓은 것을 찾기 어렵다. 아직 몰라도 보신탕 금지 정도나 퍽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남지 않을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가장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상왕처럼 뒤에 방관하 듯 앉아 있고, GSKK*(-GG는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안 맞고, 억지로 General Good이라고 둘 러댄 것도 가소로운 식자우환이다)들이 앞에 방패로 막더니, 끝내 BTS까지도 행사 기획한다 는책사에잡혀가무를앞세워‘쇼통’을미화해모시는UN의큰자리에쓰였다. 또한국최초 자력 인공위성 궤도 진입 로켓 발사장에도 실무자들의 발표 자리까지 제치며 빠짐없이 얼굴 을 드러내 생색내기 바빴다. 이 현상을 4자성어로 요약하면 내모남빌(내 잘못은 모르쇠, 남 잘한 것 빌붙기)이다. 무능했던 못된 실체를 드러내놓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날도 얼 마 남지 않았는데, 마치 ‘동물농장’에서 양들에게 조사한 듯한 결과로 문빠 골수들의 인기도 가 높다며 사과도 없이 그대로 퇴장하려 한다.
집값을 못 잡은 원인 중의 하나는 서울 경기 중심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을 조정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여러 요인이 서로 엉켜 있는데, 특히 우선 좋은 직장들이 서울 중심 으로 몰려 있어 인재들이 지방으로 가려 하지 않게 되었다. 제2도시 부산에도 오래전부터 대 학생들조차 현지 직장을 찾기 어렵다고 서울이나 타지로 기웃거리게 되어, 점차 신규 대학생 모집도 점점 어려워 가는 경향을 보인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 하던 사람들이 어쩌다 서울 가서 부산 젊은이들의 인권을 이렇게 짓밟아 대는 치적을 남길 줄이야! 이렇게 여건이 나빠 지니 직장도 집도 못 얻어 결혼도 못하여 자연히 부산 인구는 줄어들고 특히 젊은 층이 빠져 나간다.
* 원래는꽤식자층에속해야할여당인사가현행로마자표기법도모른채욕지거리를감추려 GSGG라고 썼었는데 ‘-끼’는 –kk로 쓰는 것이 현행법에 맞다.
참고로 OECD 국가 수도권 집중도가 현재 영국 12%, 프랑스 19%, 일본 28%라는데 한국은 이미 1980년에 28%, 2020년 이후 50%란다. 이러니 지역 청년이 유출되어 수도권으로 집중 과밀화되고 주거와 취업 경쟁이 심각하게 되다 보니 비혼/만혼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급락하 여 인구 감소에 고령화가 심화되며 결국 지방은 순차적으로 거의 소멸하는 것이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이런 현상을 안듯 부산으로 와 서울 과밀 인구를 줄이고 2주택도 풀어 아예 무주택으로 정부에 협조했고 무리한 부동산 세금도 잘 내 왔는데 선산까지 털어 가니 기가 막힌다. 보통 납골 묘를 그대로 이전하는 것은 안 되고 새 묘지공원에서 규격 맞춰 만든 납골 묘를 새로 사야 한다는데 가격도 엄청나다. 심지어 납골당 대부분도 면적에 비해 턱없 이 비싸다. 코로나 시대에 면대면 없이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에 좋다 했더니, 공급은 막고 조 이기만한 졸렬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결과로 여기저기 묏자리를 알아보고 이전하는 데 아까 운 시간을 쓰게 되었다.
각설, 원자력발전소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오해에 휩싸여 처음에는 해운대에서 고리 원자 로가 너무 가깝기에 탈 원전을 꼭 해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형 원자로의 안전성과 유사 시도 폭발이 아니라 방사능이 새나오는 동안 여유 있는 대피 시간의 가능성 등을 원자력 공 학과 교수에게 듣고 난 뒤에는 안심하며 살게 되었다. 더구나 전기료 인상을 피하고, 장래 탄 소중립 정책에 더 맞는 원자력 발전은 더 증진시켜야 할 방안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원자력 산업을 위축시켜 놓아 전 세계가 원자로를 증설하려는 방향으로 가는 데도 한국형 원자로는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우수함도 살리지 못하고 모든 시장을 잃고 말게 되었다. ‘판 도라’ 영화 하나 잘못 본 인간이 미치는 막대한 폐해를 온 국민이 떠안고 그 원인 제공자에게 피해 보상도 못 받을 통탄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냥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나 보고 이 어리석 은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붙임] 코로나가 퍼져 외출과 모임도 못하여 전시회를 즐겨 가던 사람들이 거동을 삼가게 되었다. 필자도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며 큰 도시에 가게 되면 우선 미술관과 박물관부터 찾던 즐거움을 빼앗겼다. 그래서 “패러디의 즐거움: 문자·미술 감상 상(上)의 독창적 상상 (high-concept)”이라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sangoak33을 만들어 보았으니 대상 (代償)의 간식으로 조금씩 토막 열어 즐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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