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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탐방: 지정학적 요충에 얽혀진 민족과 언어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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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7-04-06
조회
128
I. 이란
이란(면적 1,648,195km², 인구 79,212,900명)이라 검색하면 여행 유의 국가로 나온다. 양옆
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여행 금지 국가로서 현재 내전 중이거나 치안이 불안하여 매우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내가 단체 여행으로 간 일정은 이란 중부를 아래위로 훑은 것이었기
에 실제로 여행을 하며 위축감은 전혀 없었다. 인권 탄압과 여성차별 문제도 있다하나 외국
인도 그저 조용히 관광만 하며, 여자는 늘 머리 스카프를 두르고, 남자는 모스크에서 반바지
만 안 입으면 별 문제는 없었다.
인구는 7921만 내지 8280만명(2016년)에 페르시아인 61%, 아제르바이잔인 16%, 쿠르드족
10% 등의 민족 구성이다. [51/24/7%로 집계된 통계도 있음]
인근 아랍권과는 1) 민족: 아랍인 vs. 페르시아인, 2) 언어: 아프로-아시아어족의 아랍어 vs.
인도유럽어족의 페르시아어, 3) 종교: 수니파 vs. 시아파로 달라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란은
중동권, 이슬람권이지만 언어/민족상 아랍권은 아니다.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하면 이란인도
아랍인도 화낸다. 중동권에 위치하고 이슬람을 믿기는 하지만 페르시아계 민족이다.
페르시아(Farsi)어의 표기도아랍 문자에 기반해서 한국인이 봤을 때 아랍어와 비슷해 보
이고, 종교도 일단은 같은 이슬람이며, 외모도 비슷하게 보인다. 같은 이슬람이라고 해도 주
로 이란에 집중되어있는시아파는수니파와 다른 양상을 보이며(가톨릭-개신교 차와 같이),
아랍인들이 이슬람을 전파하기 이전에도조로아스터교, 마니교등의 종교적 전통과 역사에서
우러나온 풍습이 있었기에 이것이 이란의 이슬람에 상당히 반영되었다. 마찬가지로 터키나
아제르바이잔(튀르크계)도 아랍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쉬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고,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도 강한데, 우리나라의 빈말과 유사한 ‘터로프’가 대화에 일상 묻어난다. 자기의 본심과 다르
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편의를 봐주는 줄 알고 덤볐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우리 정
서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가 그리 인기인가 보다. 한편 이란에서는엄지
120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2016, 제12호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이성관계 욕이다.
이란인은시를 좋아하며,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한 나라이고, 이란의영화도 국제적으
로 인정받고 있다. 이란 여행 중 한국 가이드가 보여준 ‘쿠쉬나메’라는 문헌에 관한 비디오는
한국 TV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로서 그 중 ‘바실라’라는 부분은 과거 신라와 교류한 얘기로서
근래에 소설과 무대예술로 소개 되었다.
164만km²인 면적은 서아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215만km²) 다음으로 넓고 아시 아에서
도 중국(960만km²)-인도(328만km²)-카자흐스탄(278만km²)-인도네시아(190만km²) 바로 뒤
다. 여정은 테헤란에서 커션이란 도시로 이동, 제단인지구라트 유적; 다음 날 이스파한으로
이동,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이맘 광장,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인이맘 모스크, 사파비 조의 자랑인알리카푸 궁전, 이란 내 아르메니아 교회인 반크
교회 및 아르메니아 박물관, 야경이 아름다운 33개의 아치형 다리인씨오쎄폴, 17세기에 건
설된 댐 형식의커쥬다리[이 두 다리는 강물 부족으로 거의 마른 땅에 서 있었다]; 야즈드로
이동,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아테슈카데, 조로아스터교의 장례법인 조장의 풍
습을 엿볼 수 있는침묵의 탑; 쉬라즈로 이동,여행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코란 게이트, 페
르시아제국의 영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 페르세폴리스 유적지(아
파다나 궁전, 크세르크세스 문 등) [이 유적을 일으킨 알렉산더는 이란인들이 자랑스러워하
는 페르시아를 멸망시켰으니, 칭기즈 칸과 함께 침략자 취급을 받는다]; 테헤란으로 돌아와
이란 국립고고학박물관, 팔레비 왕조 시대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사드 아바드 궁, 세계에
서 가장 뛰어난 수준을 자랑하는 이란 카펫 박물관 등을 관람하였다.
국교는 이슬람 시아파가 주류[이란내 시아파 90%(세계적으로 유일한 예), 수니파 8%(쿠르
드족, 발루치족); 전세계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를 이루는 국가다. 내부적으로바하
지도 1 이란 여정
2부 칼럼 121
이교나조로아스터교,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유대교,기독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
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아 나아졌다고 한다.
시아파(약 2억 명)가 다수 수니파(약 20억 명)로부터 갈라지게 된 것은 원조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며 사위인시아트 알리를 추종하여 1대가 시작되었다. 그 아들 제2대 이맘 하싼의
퇴진 후 동생 제3대 이맘후세인(이븐 알리)이680년에 전사한 곳이지금의 이라크의카르발
라와 인접한 나자프로서 알리, 후세인 사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시아파의 최대 순례지가 되
고 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립이 격화된 2016년부터 카르발라를 메카 대신 이란 정
부추천의 순례지로 정한 것 같다. [아랍권에서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드문 경우가이라
크(약 60%),바레인이며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수니파가 훨씬 많다.]
하지만 시아파가 이란의 주류가 된 것은 17세기사파비 왕조이후이고, 그 이전까지는 수
니파였다. 페르시아와 시아파가 역사적인 연관관계는 전혀 없다. 더구나 수니파 교리를 정립
한 셀주크의 명재상니잠 알 물크는 이란인이었다.
최대 성지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정교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예배를 보게 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개방적일 뿐, 외
국 선교사들에게는 부정적인 것 같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왕 시절 유대인 우대정
책 아래 도외시되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
나사우디아라비아,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도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엉터리 유대
인들이 정권을 잡은 현재 이스라엘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공인 종교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다. 그래서 해외 거주 유대인들은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행사를 거북하게
여기는 경향이다.
이란은 시아파 무장단체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으며,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
니파 계열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다. 아제리인, 쿠르드인 등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살고 있
는 전형적인 다민족국가이지만 눈에 띄는 민족간의 분쟁은 없어내전과테러에 시달리는 주
변국들과 달리 정세가 안정된 편이다.
아리아인의 후예인페르시아인들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에서도 페르시아인 피가
섞인 아제리 튀르크가 과반수를 차지한 덕분에 유럽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꽤 많고,페르시아
가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무렵 아랍은 이렇다 할 문명도 국가도 없이 여기저기 산재한 아
랍인,베두인야만족들이 부족단위로 유목생활을 해왔는데, 이제는 석유로 인해 아랍이 더
잘 나가자당연히더욱 더 이를 갈고 있다.
122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2016, 제12호
이들은 인종의 분포가 다양한 카프카스 즉, 캅카스 혹은 영어식 발음인 코카서스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민족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어서 중
앙아시아 기원인터키는 고깝게 본다. 실제로히틀러가 이란을 아리아인의 조상으로 우대한
적이 있었다.
페르시아는 과거에 실존했던 대제국이며, 이란인들의 전반적인 아랍인들에 대한 악감정도
뿌리가 깊다. 페르시아인이, 원래 무슬림이 아니였으며, 아랍이 많이 믿는 수니파가 아닌 시
아파를 믿은 것도 아랍과 같은 믿음을 갖기 싫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라크, 터키, 시리아와 함께수니파 쿠르드족이 이란 서북부에 600만 명 이상 많이 거주하
지만,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 살아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
으나 감시의 눈길은 만만치 않다.
아르메니아인도 소수 거주하는 나라이다. 아르메니아 인종 자체부터 이란계 인종이라 이
란에서도 같은 형제급으로 우대하는 편이고, 터키에서처럼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당하거나
강제 이주당하는 경우도 적었고 오히려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 속 노른자위 땅
에서 상업을 할 위치에 올랐다. 이란-이라크 전쟁당시 경제적인 군자금 지원까지 맡았고, 더
욱 대규모 이주가 가능했다. 한편 호메이니의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상업적 특권을 아르메니아계들에게 빼앗기는 일이 있긴 했어도 학살이나 강제 개종 같은 일
없이 공존했다.
아제르바이잔과는 기묘한 관계다. 아제리인들은 이란에서도 1,000만 명이 넘게 살고 있을
정도로 무시 못한다. 하지만 아리아계와 혼혈이 많이 이뤄졌고 아제르바이잔 본국을 그리 고
향같이 여기지 않는 이들도 많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에게 원수 같은 아르메니아와 사이좋
게 지내려고 하는 이란인데다가,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 껄끄러운 터키와 매우 사이가 좋기
에 이란으로서는 좀 거북스럽다. 튀르크계 민족인 아제리족이 이란에 거주하게 된 것은 이란
이 장기간 튀르크계 민족의 지배를 받은 여파다.
‘고귀하다’라는 뜻을 가진이란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선호
한다.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말인 “인샬라”(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있다)라
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이러한 정신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매사에 느긋하며 의사결
정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 이를 잘 참지 못하는 면이 있다. 또한 과거 페르시아 상인이라는 말이
있듯 상술에 정통하다.
2부 칼럼 123
II. 코카서스 3국: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고대로부터 교역과 지정학상 요충지인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산맥을 따라 아제
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3국이 얽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좁은 지역은 우랄 산맥과
더불어유럽과아시아의 육상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 때문에 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서
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하는 등 경계가 모호하다. 일단 해당 3국은 현재 유럽의 각종 국제기구
에 가입해 있는 등 정치, 경제적으로 유럽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3개국 국민들도 자
국이 유럽이라고 믿지, 아시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일부에서는 문화적, 종교적으로
유럽과 가까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유럽으로,터키와 밀접한튀르크계이며이슬람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은 아시아로 보기도 한다. 세 나라 모두 유럽에 속하는 러시아제국과소련의 지
배를 최근(1991년)까지 받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유럽적인 문화에 동화된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조지아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유럽연합가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3국의 여정은 다음과 같았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남쪽의 카스피해에 인접한 고부스탄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
산으로 지정된 동물그림과 암각화 등,세계 7대 경관 후보지에 선정된 용암처럼 솟아난진흙
화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이췌리쉐헤르 바쿠 구시가지, 15세기 아제르바이잔 건
축의 진주라 불리는쉬르반샤 궁전; 아제르바이잔의 옛 왕궁의 수도 쉐마키로 이동; 실크로
드 교역의 중심지 쉐키로 이동, 카라반들이 쉬어가던카라반사라이탐방; 코카서스 산맥 만
년설의 장엄함을 볼 수 있는 시그나기로 이동.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대표적 건축물인 5세기 요새나리칼라 성; 조지아의 옛 수도인
므츠헤타로 이동;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십자가 성당이라는 뜻의즈바리 수도원등 관
광; 조지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카즈베기로 이동,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깃든카즈베기 산;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로 이동, 트빌리시 경유,
[아르메니아] 국경도시인 바그라타센 도착, 유네스코 문화유산하그바트 수도원관광; 호
수 속 섬 위 수도원인세반수도원(외관)관광; 수도 예레반 경유;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는
게그하르트(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옆구리에 박힌 창을 의미하며 이 창이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함.)로 이동; 20세기초 오스만제국 거주 기독교인을 무슬림이 학살한 아르메
니아인 대학살 기념관, 1만 2천 개의 원문, 사본 등이 잘 저장된마테다나란 고문서 박물관;
(예루살렘의 한 구역을 차지할 정도로 유서 깊은) 아르메니아 국교인 초기 기독교가 태생된
곳으로 깊은 지하감옥이란 뜻의 코비랍 수도원, 터키 동부, 이란 북부, 아르메니아 중서부 국
124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2016, 제12호
경에 위치한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라트 산조망; 예레반으로 복귀, 세계 2차 대전 참
전 기념 빅토리 광장, 아르메니아 어머니상, 예라반 공화국 광장, 케스케이트 전망대등 관광;
2~4세기에 아르마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예치마이진으로 이동, 세계 최초의 성당이자 아르메
니아 정교의 총 본산인예치미아진 대성당관광, 7세기에 건립된 그리스, 비잔틴, 아르메니아
양식이 총결합된 당대 최고의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즈바노츠 수도원관광;
예레반으로 복귀.
1.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면적 86,600km², 인구 9,593,000명)에서는 본국을 북 아제르바이잔,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을 남 아제르바이잔이라 부른다. [참고로 이란서북부에 아제리인들이 1,000만
명 넘게 거주하며 이란의 종교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도 남 아제리인이다.] <지도 3>을 보면
아제르바이잔인이 거주하는 지역 사이에 아르메니아가 구멍 뚫린 듯 있는데, 실제로 소련 붕
괴 이전에는 아르메니아에도 아제르바이잔인이 많이 거주했으나 붕괴 이후 양국 관계가 악
화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아르메니아를 떠났다.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공화국(NKR, <지도 4> 참조)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로 사실상 독립 상
태에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문화가 비슷하며, 주민의 다수는터키인과 유사한아제르바이잔인
이다. 이웃 국가인아르메니아의 남서쪽 구석에 떨어져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고립 영토인나
히체반(나흐츠반, <지도 4>의 AZ. 표시) 자치 공화국은 소련 치하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답습
한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비호를 받은 나고르노-카라바흐가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적으로
지도 2 코카서스 3국의 여정
2부 칼럼 125
인정을 못 받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2008년에 무력으로 영토를 되찾을 것을 다짐하
고 계속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때문에터키와 혈맹이면서도 터키가 아르메니아와 화해하려
고 하면 결사반대하여 두 나라를 낭패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어가공용어이고러시아어와터키어도 사용하며,터키어는 국가의 서부 지역
인나히체반 공화국에서 다수 사용되며, 러시아어는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의한 영향으로 인
해 일상 사용되고 있다.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아르메니아어도 사용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산유국인지라 별명이 ‘불의 나라’다.카스피 해중에서 나오는 유전때문에
러시아로서도 소련이 붕괴할 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다.3국 여행을 한 뒤 느낌은 아
지도 3 아제리 인의 분포
출처: https://namu.wiki/w/아제
르바이잔
지도 4 아제르바이잔 및 인접국가

출처: https://namu.wiki/w/나고
르노카라바흐
코카서스 지역과 중동 지방의 아제리 인(Azerbaijanis) 분포 범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공화국외 아제리 인이 다수민족인 곳
126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2016, 제12호
제르바이잔은 산유국으로서 풍성한 경제 상황이며, 유로비전 2011에서 우승해 다음 개최지
가 되었기에 전국이 공사중이었고, 조지아 등 인접국에 원조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상남
도 크기만한 나고르노카라바흐(NKR) 영토 문제로 아르메니아와는 대립 중이다.
아르메니아, 체첸, 타타르, 치르케시아인 등을 보면 강대국들에게 인종 청소를 당한 뒤에
도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뿌리를 박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세계를 제패했던몽골
제국의 군대도 이곳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군은히틀러의 명령으로
이 지역의 유전을 장악하기 위해 침략하다가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4개국, 즉 러시아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이를 가는 사이다. 아르메니
아는 옆 나라인터키와도 최악의 관계이다. 조지아는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괜찮은 편이며,
아제르바이잔과도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2.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면적 29,743km², 인구 3,056,382명)는 기독교도가 94.8%로 이슬람 세계 속에
서도 3000년 이상 생존해 있는 국가다. 아제르바이잔은석유가 있으나, 아르메니아는 항구도
지하자원도 없는데다가 사방이 적국인, 그야말로 암울한 상황이다.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미
국 가서 성공한 동포들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그
근면성으로 성공을 이루어냈고 부유한 걸로 유명하지만, 그 분야 선배인 유대인들과 경쟁하
는 사이고,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은 별로 사이가 안 좋다. 러시아에게 군사적, 외교적으로
의존하지만 러시아는 행패를 부리는 상황이다. 더구나 산유국과의 군비경쟁은 되지 못하므
로 분쟁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운명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구소련의 15개 구성국들 중 가장 작고 인구도 세 번째로 적은 나라로 영토 크기는 전라도
와 비슷하다.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깝기에
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공용어는아르메니아어이다. 1세기에 기독교를 전파 받아 301년 세
계 최초로 공인하여 오늘날까지도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로서 그 명맥을 이어 온 나라다. 313
년에서야 그리스도교를 공인한로마제국에 비해 12년이나 앞선 것이다.
코카서스 3국중에서는 모든 면에서 자원이 열악한 나라로 아르메니아 대지진이 났고 자원
도 부족하지만, 수려한 자연환경과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피서지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불
의 나라'에 대비되어 ‘돌의 나라’로 칭해지며, 실제로 석재가 풍부해 많은 석조 교회들이 있다.
이 나라를 들어오려면 러시아나 조지아를 거쳐서 오기 때문에남오세티아 전쟁당시에는 타
격을 많이 받았다.
인구는 300만 명일뿐이지만 러시아,터키,이란,레바논,시리아,이라크, 미국과아제르바
2부 칼럼 127
이잔(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을 포함해 해외 70개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은 600만 명
이 넘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를 훨씬 초과한 나라다. 이들이 보
내는 달러 송금과 홍보가 아르메니아의 경제를 유지하고 국가를 알리는데 도움을 준다.
미국 정계에도 아르메니아계들이 자리잡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당시 미국이 큰 지원
금을 보태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에선 반미 움직임이 거세져 친러 정책을 펼치
고 지금도 미국과 거리를 둔다. 한편 아르메니아도 필요상 강력한 친러 정책을 실시하면서
미국은 이젠 그때처럼 퍼주지 않고 있다.
이 열악한 경제에 설상가상으로 원수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일부러 아르메니아를 비껴
가는 파이프 라인과 철도를 부설하면서 고립된다. 아르메니아의 저지노력이 터키의 극심한
반발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박살난 자국 경제 사정을 개선하려던 조지아의 반발로 무산되
었다. 조지아는 철도와 파이프 통과비로만 매해 2억 달러 이상을 얻을 전망이다.
조지아로선 아르메니아가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원수사이라 득이 되며, 카자흐스탄 과 우
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같이 석유와 가스가 넘치는 나라들까지 이 파이프 라인과 연
결되면 입지는 더 단단해진다. 조지아의 무역 수출입 관련 1,2,3위가 바로 러시아, 터키, 아제
르바이잔이다. 아르메니아와는 그냥 적당하게 지내는 이웃 나라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서구에서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감)을 두고 옹호
하지만 아르메니아를 더 지지할 수 없는 큰 이유가 아르메니아가 강력한친러국가라는 점도
있다. 훨씬 덩치가 큰 터키 같은 적이 많다보니, 조지아나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과 달리,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게 자진해서 의존해야 했다.이렇게 동유럽에
서는벨라루스와 함께 보기 드물게 친러 정책을 고수하는 나라이지만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러시아에 가지는 감정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이웃 나라 중에서 이란은 사이가 좋아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기도 하고 근현대 와서 종
교를 인정하며 자치구역까지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주도하던 이란 경제봉쇄에
난감해했지만 2016년 제재 해제에 아르메니아도 무척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지아와는 이웃의 작은 나라로서 같은 기독교 계열 나라라 친하게 지내지만, 조지아가 터
키와 아제르바이잔에 경제적 눈치를 많이 본 탓에 좀 서먹한 편이다. 그리고 조지아는 러시
아와 교류를 하기는 하지만 전쟁을 겪은 이후 반러감정이 강한 편이라 러시아와 되도록 친하
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아르메니아와 의견차도 있다. 해외 아르메니아인들이 보낸 돈 덕에 아
르메니아가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해외로 뜬 까
닭이 아르메니아 대학살 때문이므로, 끝내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원인을 제공한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아르메니아는아르메니아어로 '하야스탄'이다. 즉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는 원래 ‘키르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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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렇
게 7개가 아니라 8개인 것이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르메니아어는 독자 문자가 있다.
언어학자들은 이 언어를 조지아어와 함께, 고대 그리스어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 최초 기독교 나라임을 자부하는 아르메니아이지만, 가톨릭에게도 개
신교에게도 이단시 당하면서 이슬람과 더불어 다른 기독교 종파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왔
다. 그래서인지 자국 정교회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국교화 요구까지 있었고 나머지 기독
교 종파들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외국 선교사들의 아르메니아 입국 및 선교
활동 탓이 컸다.
그 밖에터키와아제르바이잔을 빼면, 아랍권이슬람 국가들도 터키에게 지배를 받았던 역
사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다만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당시에는 미국
이 옹호했고 기독교 국가가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 때문에
반아르메니아 분위기가 거셌다.
3. 조지아
조지아(면적 69,700km², 인구 4,931,226명)는 남카프카스에 위치하며,흑해와 접하고 있는
국가다. 코카서스 산맥 때문에 바로 옆 나라인 러시아와 달리아열대기후를 띠기도 한다. 현
재 서부의 압하스(압카지아)와 중부의 남오세티야를 러시아에게 점령당한조지아가 원래대
로의 통계에 의하면 조지아인 83.8%,아제르바이잔인 6.5%,아르메니아인 5.7%로 구성되어
있었고, 기독교88%(정교회84%,아르메니아 사도 교회4%),이슬람교10% 등이었다.
인종, 역사, 종교, 문화적으로유럽에 속하기에동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지리상으로
는 서아시아에 속하는 지정학적 요충이다. 대략 8,000여 년 전 농경이 시작되었고, 3,000여
년 전이 되면 본격적으로 역사에 조지아가 드러난다. 11세기 셀주크의 침략 때는 험준한 캅
카스의 지형 덕에, 몰락해 버린 옆나라 아르메니아와는 달리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스
만 제국 때는 다 함께 편입되어 버린다.
18세기말 북쪽에서 기독교 제국 러시아가 나타났고, 이후 서쪽의 다른 공국들도 차례로 합
병되면서 19세기 말까지 지금의 조지아 지역은 완전히 러시아령이 되었다.소련치하에서 조
지아 출신이오시프 스탈린이 오랫동안 소련의 지도자였으나 여기서도 수만명이 죽거나 추
방되고 전쟁터로 끌려갔다. 1980년대가 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시위가 빈발했고 1989년 소련
군이 평화시위를 무력진압하자 반발이 더 심해졌으며, 1991년 조지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
을 선언하였다. 조지아는 러시아가 수출입 1위인 상대라서 무작정 미워할 수도 없다.
유럽에서 둘째로 오래된 기독교 국가인 만큼 조지아정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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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적 영향력도 높은 편이다. 주변이 이란, 터키등 이슬람 세력으로 둘러싸여 있어 끝없는 침
략을 받아오면서도 1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신앙을 지켜 왔으니 당연하다.그러나 압하스
와 남오세티야 지역에서는 동일한 정교회권에 속해 있는 러시아 정교회와의 갈등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천혜의 자연과 적당한 노동, 조지아식요구르트등 몸에 좋은 음식들이 장수의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르메니아가브랜디의 국가라면 조지아는 고급와인생산지이다. 조지아가
와인의 최초 발생지라는 점은흑해연안에서 족히 8천년전의 포도씨가 발견되어 입증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미국, 칠레 등에 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유
럽 48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조지아는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 4위에
올랐다.
터키와 국경이 닿아있는 남동부 지역은 아자라 자치공화국, 또는러시아어식인 아자리야
라고 부르는 곳이다. [<지도 5>의 왼쪽 아래 참조] 인종적, 언어적으로는 조지아인과 흡사하
지만 16~17세기오스만 제국통치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이 아자라인이다. 그러나 오
랜 사회주의 통치와 독립 이후의 기독교화 정책 때문에 아자라인 중 무슬림은 이제 30%밖에
안 된다.
조지아는 구소련권이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2014년 유럽연합은 조지아와 연합 가입 첫 단계인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세계에
서 가장 안전한 국가’ 순위에서싱가포르등을 제치고8위에 랭크되는 등세계의 화약고 취
급받는캅카스지역에서는 치안이 가장 안정된 편이다(한국은 4위). 수도 트빌리시의 구시가
지도 5 조지아 및 인접국가
출처: https://namu.wiki/w/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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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고풍스럽다. 조지아라는 영어 국명은 기독교 성인인성 조지(St George)의 이름을 딴 것
이다. 한국에서는 원래는 러시아어식 국명을 따라서 ‘그루지야’라고 표기하였으나, 러시아를
싫어하므로 이 나라의 정부가 영어식 국명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사실러시아도 추운 나라라는 일반적 편견과 달리 조지아와흑해/카스피해에 면한 남부는
따뜻하다. 조지아와 가깝고 최근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소치의 경우대한민
국최남단서귀포시보다도 연평균 기온이 높은 곳이다.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스스로의 정체성도 서아시
아보다는유럽에서 찾는다. 과거 조지아 왕국은 자신들 스스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유럽의 방파제’라고 불렀다.
[위 원고의 지도 등 많은 부분을 ‘나무위키’(http://namu.wiki)에서 자료를 따다 썼다. 그리고 한국과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를 유념하면서, 여행 중 경험을 곳곳에 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