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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에 캉가루는 뛰어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29
조회
52
청산에 캉가루는 뛰어도

딸 아이 하나를 잘 키운다고 호주로 데려 왔다. 사실 고등학교 2년 반을 시드니에서 다니면서 한국의 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몇 가지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첫째가 영어를 많이 배워 평생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좋은 실험실습을 받았을 뿐 더러 자료를 스스로 찾아 연구 리포트를 쓰는 공부 방법을 배워 간다는 것이다. 셋째는 외국에서 한국학생으로서 느낀 국제감각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자기 일은 자기가 선택하도록 길러진 딸아이는 친구가 많고 떡볶이가 있는 서울을 택했다. 입학시험 준비를 하러 8월말 먼저 귀국했고 엄마가 뒤이어 고3의 “고생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고 떠났다. 다음과 같은 쪽지를 님기고, “많은 말들과 생각들이 침묵이라는 자루 속에 들어가 여행을 떠납니다. 자주해 보지 않았던 혼자 여행이기에 가슴이 떨리기조차 합니다.”
11월로 들어서려는 주말에 나도 편지를 썼다. “시드니에는 자카란다가 곱게 피기 시작했다. 꽃들과 숲, 청산(Blue Mts. 시드니 서쪽)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리 집은 요즘 너무 호젓하다. 움직이는 친구라고는 기니피그밖에 없다 어제는 채소가게에서 과일을 사며 이놈 줄 채소도 잔뜩 구해 왔다. 주인(딸 아이)을 생각하며 키운다. 무지개 앵무새도 계속 찾아온다. 평소 모이를 잘 주던 엄마를 생각하며 새들 쌍쌍을 맞는다. 앵무새 쌍처럼 다정하게 살아야 한다고 새들에게 한 수 배운다.
엄마가 얻어 왔던 초롱꽃 가지가 뿌리를 내려 다복이 꽃이 피었다. 내가 수퍼마켓에서 사다 심은 열정의 과일(Passion Fruit)도 올해는 꽃이 피기 시작해 과일이 꽤 여물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모습을 그림에 담아 둘 것이다. 오늘도 몇 달째 피어서 그려주기를 기다려 온 극락조(Birds of Paradise)라는 꽃을 수채화로 그려 보았다. 나는 이런 생활을 좋아한다. 꽃과 새소리에 싸여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이미 서울에 가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감기에 조심하라는 편지를 보낸 지 얼마 안 돼서, 편도선염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이 왔다. 정말 서울의 공기는 떠나 있던 2년 반 사이에 더 나빠졌나 보다. 그러나 다행히 아이의 대학입시는 기대 이상 좋은 결과를 맺어 이화대와 고려대에 다 합격이 되었다. 그것도 각각 이대 인문계에서 최고 득점, 어렵다는 고대 법대에 된 것이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3년간 시드니에서 많은 교포학생들도 가르치면서 권고하기를, 한국 젊은이 중에 변호사나 의사 등은 꽤 나왔지만 호주 언론계에 파고들 기자가 없어 한국관계 보도에 영향도 끼치지 못하여 부정확한 내용 그대로 전달되는 일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고 해 왔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가서 공부를 하게 됐으니 이런 권고보다는, 국제정치나 경제문제를 다루는 전공을 권해 볼까 한다. 그 까닭은 우리가 외교나 통상 분야에서 외국과의 교섭이 막대하게 많아졌으나 사실 그 동안 영어회화 자체가 안 되어 서 얼마나 많은 고전을 해 왔는가 돌이켜 보면 새 세대들의 기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꽤 배웠고 국제감각도 생겼다면 한번 이런 분야에 진력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그런데 딸아이가 호주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려한 뒤안에는 아마도 학교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얼마간의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 담소하는 곳에 못된 호주 녀석이 다가와 놓아둔 책가방을 공연히 짓밟고 가더라는 것이다. 귀가 후에야 가방 속에 있던 전자사전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다음날 내가 교감선생님께 정중히 문제해결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호주 녀석은 원래 성격이 이상한 편이고 부모가 과잉보호를 하는 집이라 변상은커녕 범죄(!)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깨어진 것을 확인한 것이 아니니까 그 뒤 어느 때인가 달리 깨어졌을 수도 있다는 어거지였다. 학교로서도 이렇게 억지를 쓰고 나오니 몇 백 불 때문에 법에 호소할 수도 없고 사실 증거 위주로 따질 경우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형편이니 그냥 참으라는 것이었다. 학생 소지품까지 보험에 들어 놓지 않아서 학교내 보험으로 변상이 안 되니 미안하다는 말을 보탰다.
나는 그 부모에게 짧고도 분명한 사연을 써 보냈다. “당신이 지금 아이를 감싸주면 그 아이는 다음에 더 큰 잘못을 저질러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식을 잘못 되게 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어른답게 또 같이 아이들을 잘 교육하겠다는 입장에서 판단하라.” 증거며 법이며를 떠나 다분히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여전히 편지를 전달한 학교의 처사를 나무라는 태도였다.
하여튼 이 집안은 부모가 더 못된 사람임에 틀림없고 아마도 그 조상도 죄수가 아니었을까 싶은 심증을 준다. 호주의 치부를 보이는 사건이었다. 어른으로서도 기가 막히는 일이니 딸아이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해가 된다. 물론 우리 아이가 이 한 가지 사건만 가지고 주눅이 들어 호주를 싫어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학교에서 잘 어울리고 아무 문제없이 지내다가 재수가 없어 미친개에 물린 꼴이 된 우발적 사건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얘기들은 우리를 모두 우울하게 만든다. 이 좋은 자연, 이 좋은 기후를 차지한 인간들이 왜 요 모양인가? 청산에 노루가 뛰놀고 머루가 영글지는 않아도, 캥거루가 뛰어 다니고 검트리 그루들이 어울리는 이 낙원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혹시 딸아이가 법학을 전공해서 법이 안고 있는 자체 모순을 해결해 나간다면, 범죄자가 오히려 법적 증거를 들먹이며 법적 정의를 피해 나가는 요즘 세상 꼴을 낙원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 본다. 백호주의자 헨슨이나 미국의 치한 심슨 같은 인간들이 법원의 이상한 판결 하에 큰소리치며 사는 세상을 별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세대로서 하는 말이다. (호주 동아일보 ‘시드니 광장’ 1996. 12. 17)